[횡설수설/정세진]비밀 메신저 ‘텔레그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2014년 9월 국내 누리꾼 사이에 ‘사이버 망명’ 사태가 일어났다.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신설한 검찰이 세월호 집회와 관련해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그룹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알려진 이후다. 독일에 서버가 있어 한국 사정당국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데다 보안도 뛰어난 메신저인 텔레그램에 한 달여 만에 한국인 100만 명 이상이 가입했다.

▷김지은 정무비서 성폭행 논란을 빚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도 텔레그램의 ‘비밀대화 기능’을 이용해 김 씨와 대화해왔다. 비밀대화 기능을 쓰면 본인이 보낸 메시지를 1초∼1주일 등 시간을 정해 상대방의 대화방에서 자동 삭제할 수 있다. 비밀대화 도중 화면을 캡처하면 대화방에 ‘∼님이 화면을 캡처했습니다’란 문구가 뜬다. 비밀대화방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기능은 당연히 없다.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개인이나 정치인, 범죄단체까지 텔레그램을 애용해온 이유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브콘탁테’를 설립한 개발자 파벨·니콜라이 두로프 형제가 러시아 당국의 검열에 반발해 2013년 독일에서 만든 비영리 모바일 메신저다. 텔레그램 측은 정기적으로 수억 원의 상금을 내건 해킹 콘테스트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뚫린 적이 없다. 일반 메시지의 대화 내용은 서버나 휴대전화에서 사라져도 복원 가능한 경우가 있지만 텔레그램은 불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은 보안이 강해 휴대전화에서 일단 사라지면 포렌식(디지털 저장매체 정보 분석)으로도 복구가 안 된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가 텔레그램으로 피해자와 대화를 나눈 것도 비밀이 보장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대화의 대부분은 비밀대화의 자동 삭제 기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는 일반 대화방에서 이뤄졌고 이 기록이 남아 결국 세상에 공개됐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비밀 메신저인 텔레그램에 남은 대화가 성범죄의 간접증거가 됐다. 최신 기술을 방패 삼아 보안을 유지하려 해도 그 방패가 언젠가 뚫리지 말란 보장이 없다.
 
정세진 논설위원 mint4a@donga.com
#텔레그램#김지은 정무비서 성폭행 논란#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비밀대화 기능#브콘탁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