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화에 막혀 ‘소통 절벽’ 확인한 청와대 5자 회동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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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간의 청와대 회동이 7개월 만에 열렸다.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 준수 등을 여야 지도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야당 측은 박 대통령의 발언마다 반론을 펴면서 인식의 차이만 벌려 놓았다. 무엇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전체 108분의 회동 시간 중 30분 이상을 논의하면서도 정국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국회가 제대로 돌아갈지 걱정스럽다.

아무리 국정화 문제가 중요한 이슈라 해도 국정의 전부는 아니다.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민생과 경제를 비롯해 그보다 훨씬 중요한 국정과제들이 많다. 박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는 노력이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교과서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국회는 민생에 집중해야”라고 말했다. 이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왜 국정화에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국정화 중단을 요청하는 등 서로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노동개혁 법안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이 “17년 만에 이뤄진 노사정 대타협인 만큼 국회에서 조속한 시일 내 통과시켜 달라”고 했으나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임금피크제 등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맞섰다. 박 대통령의 방미(訪美) 성과에 관해 문 대표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대화를 박 대통령이 제안하고 추진하라”며 국민이 공감하기 어려운 발언을 하기도 했다.

소통의 출발점은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는 것이다. 모처럼 마련된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 회동에서 모두 귀를 닫은 채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되풀이하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애당초 서로가 국정을 제대로 풀어갈 의지는 없었던 모양이다. 이 원내대표가 회동 전에 “나쁜 합의보다 좋은 결렬을 택하겠다”고 한 말 그대로 된 셈이다. 회동 뒤 문 대표는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것 같은 암담함을 느꼈다”는 ‘험한’ 표현까지 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여야 지도부를 만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하지만 올해 3월 청와대 3자 회동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하고도 국회법 개정안 논란으로 이어지는 등 번번이 정국 경색만 초래하는 식이 되고 말았다. 어쩌다 한 번 ‘시혜’를 베풀 듯이 회동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없다면 차라리 회동을 정례화해서 갈등을 푸는 정치라도 배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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