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비정규직을 위한 노동개혁이 되기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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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 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9·15 노사정 합의 이후 노동계와 경영계의 손익계산이 분주하다. 양측 모두 손해라며 아쉬워하는 모양새다.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과 청년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양보할 것인가를 위한 대타협이 아니었던가. 양측 모두에 손해라도 하등 이상할 것은 없다. 이참에 분명히 해 두자. 이번 노동개혁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의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다. 향후 노동개혁 과정에서 비정규직 대책은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다만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인해 논의가 겉도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첫째, ‘차선책’임을 전제로 한 논의가 되었으면 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고용도 불안하고 근로조건도 낮다’는 데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책은 물론 비정규직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 현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도 차선책을 모색하는 이유다. 요컨대 비정규직 형태의 고용이 불가피하다면 고용형태의 다변성은 능동적으로 수용하되 근로조건만은 적극적으로 우대해 주자는 것이다.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물론 2015년 한국판 노동개혁이 최선책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어서 아쉬울 수는 있다. 그러나 비판과 반대만 하기에는 비정규직의 현실적 고충이 너무 크다.

둘째, 비정규직 대책은 ‘맞춤형’이어야 한다. 드라마 속 ‘장그래’는 비정규직의 아픔과 고충을 잘 대변해 주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업종과 사업장, 지역에 따라 너무나도 다양한 처지의 ‘장그래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고충과 바람은 각기 다를 수 있다. 비정규직 대책은 그래서 어렵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현재 2년인 기간제 상한을 4년으로 늘리는 세칭 ‘장그래법’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렇다. 정규직 되겠다고 기간제로 2년 고생했는데, 또다시 2년 더 기간제로 고생하라는 식의 정책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일자리를 더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지만 2년 상한 규정 때문에 떠나야 하는 장그래도 있다. 이 경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 모든 장그래들에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결국 관건은 비정규직 보호대상을 잘 ‘선별’하는 일이다. 논의는 주로 이 대목에 집중되어야 한다. 예컨대 독일에서와 같이 노동조합 주도로 비정규직 개개인의 바람과 진정성을 확인하는 방안도 있다.

셋째, 비정규직 해법은 보슬비 같아야 한다. 노동시장에 조용히 스며드는 정책이어야 한다. 호들갑 떨어서는 안 된다. 최선의 장애인 보호정책은 장애인이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대책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대책 같지 않은 비정규직 대책이 최상의 정책일지 모른다. 새삼스럽게 근로자 개개인들에게 비정규직임을 각인시키고, 정규직과 분리하여 괜한 갈등과 긴장만 고조시킨다면 그건 차라리 아니한만 못한 일이 된다. 그것이 아무리 선의일지라도 소용없다.

더불어 정부와 공공부문이 앞장서야 한다. 정부가 그저 훈수만 두려 한다면 결코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조금 벅차다 싶을 만큼 획기적인 비정규직 대책과 실천이 정부와 공공부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순서다.

이번 노사정 합의를 통해 우리는 노사정 모두의 놀라운 ‘용기’를 확인한 바 있다. 이제는 지혜가 필요하다. ‘비정규직의, 비정규직에 의한, 비정규직을 위한’ 노동개혁이 되도록 하는 ‘지혜’ 말이다.

권 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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