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오의 우리 신화이야기]‘오늘이’의 여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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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찾아가는 오늘이의 여정을 그린 상상도. 이지연 작가의 그림.
부모를 찾아가는 오늘이의 여정을 그린 상상도. 이지연 작가의 그림.
《 그리스·로마신화는 신화의 대명사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 땅에도 그에 버금가는 신화와 설화, 전설이 곳곳에 존재한다.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진 이야기, 우리 민족의 혼과 정신이 담긴 이야기,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격주로 연재한다. 》

인간을 비롯해 우주의 모든 일체를 지배하는 초인간적 힘. ‘운명’이다. 제주도의 ‘원천강본풀이’는 바로 그 운명을 관장하게 되는 여신 ‘오늘이’의 내력을 매우 독특하게 풀어낸 구전신화이다.

옥처럼 하얗고 예쁜 소녀가 적막한 들판에서 외로이 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소녀를 발견하고는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그 소녀가 아는 것이라곤 ‘강림들’에서 솟아났다는 것뿐이었다. 성도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소녀에게 말했다. “너는 낳은 날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니 오늘을 낳은 날로 하고 이름도 오늘이라고 짓자.” 그래서 그 소녀는 그때부터 오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오늘이는 우연찮게 그녀의 부모가 살고 있는 곳을 알게 된다. 원천강. 오늘이가 부모를 찾아가는 여정, 즉 탐문과 탐색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다.

대부분의 탐문과 탐색 이야기가 그렇듯 오늘이의 여정이 쉬울 리는 없다. 물어물어 가야 하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여정에 오른 오늘이.

제일 먼저 ‘별당에서 글을 읽는 장상이라는 동자’를 찾아가니, ‘연꽃나무’에게 물어보란다. 그러고는 자기가 왜 밤낮으로 글을 읽으면서 별당에서 나갈 수 없는지를 알아봐달란다.

연꽃나무 왈, ‘큰 뱀’에게 물어보란다. 그러고는 윗가지에만 꽃이 피고 다른 가지에는 꽃이 피지 않는 이유를 알아봐달란다.

큰 뱀 왈, ‘매일이라는 처녀’에게 물어보란다. 그러고는 야광주를 셋씩이나 물어도 용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봐달란다. 매일이라는 처녀 왈, ‘울고 있는 시녀들’에게 물어보란다. 그러고는 자기가 왜 항상 글만 읽고 있어야 하는지를 알아봐달란다.

울고 있는 시녀들 왈, 바가지에 구멍이 뚫려 물을 퍼낼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오늘이가 송진을 녹여 시녀들의 바가지 구멍을 막아주니 시녀들은 오늘이를 원천강으로 인도해준다. 참으로 철저한 ‘주고받기(give and take)’의 여정이다.

드디어 도착한 원천강. 그곳은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공존하는, 말하자면 신성 공간이다. 오늘이는 그곳에서 꿈에도 그리던 부모와 극적으로 상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도중에 부탁을 받았던 자들의 운명도 알게 된다.

“장상이와 매일이가 서로 부부가 된다면 만년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고, 연꽃나무는 윗가지의 꽃을 따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면 다른 가지에도 꽃이 만발할 것이다. 큰 뱀은 야광주를 한 개만 물었어야 하는데 욕심이 많아 세 개씩이나 물고 있어서 용이 못 되는 것이니 초면자에게 두 개를 뱉어서 주면 용이 되어 승천할 수가 있다. 네가 그 초면자인데 그 야광주와 연꽃을 받으면 신녀(神女·운명의 여신)가 되리라.”

이것이 운명이다. 운명이란 우리를 둘러싼 존재와의 상호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것. 운명을 알려주는, 한국 고유의 여신 오늘이가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신화적 메시지다.
※최원오 교수는 비교신화학자로, 서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민속학으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최원오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신화#오늘이#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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