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과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방식이 과거와는 사뭇 다른 패턴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에 있었던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60년 동맹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주요 중동 국가인 이란, 이스라엘, 그리고 사우디와의 관계가 변한다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온 국제질서의 중요한 축이 바뀐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 국제 에너지 시장의 거대한 변화가 있다는 가설을 세워봄직하다.
미국이 지금까지 중동에 외교적 역량을 투입하고 군사작전을 감수하며 개입한 이유는 에너지를 확보하고 국제 에너지 가격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북미 지역에서 엄청난 양의 ‘비전통 에너지’가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셰일가스뿐만 아니라 경질유를 중심으로 석유도 엄청난 양이 쏟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에너지 가격이 현저하게 낮아져 제조업이 부흥하고 산업생산과 고용에 파란불이 켜지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조만간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국제정치에 거대한 변화가 닥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미국이 유가를 움직일 수 있는 이른바 ‘스윙 프로듀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중동의 분쟁에 직접 군사개입을 하는 것은 매우 비싼 방식이다. 석유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미국이 적극적으로 에너지 시장에 개입할 능력을 갖게 되면 굳이 전쟁에 직접 개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더불어 평상시에도 수출 가능한 에너지를 레버리지로 삼아 전통적 산유국인 러시아와 중동 국가들을 견제할 수 있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한 이후 미국이 전략비축유의 일부를 방출했다. 걸프전쟁 이후 24년 만의 일인데,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가 급등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미국이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강화된 영향력을 적극 행사하여 러시아라는 거대 산유국을 조정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국제질서 재편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에너지가 미국과 서방, 러시아의 긴장 국면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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