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공천 번복’ 시한폭탄 안고 닻 올리는 야권 신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6일 03시 00분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그제 “(기초선거의) 무공천이 필요한 이유를 당원들에게 설득하고 의견을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합쳐진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늘 공식적으로 창당식을 갖는다. 창당을 이틀 앞두고 민주당 쪽에서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친노(친노무현) 세력의 좌장이 창당의 대의명분인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재고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달 2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합당을 선언했을 때 “환영한다”고 밝혔던 문 의원이 이제 와서 말을 뒤집으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김 대표와 안 위원장은 창당선언에서 새 정치의 기치로 ‘기초선거 무공천’ 원칙을 내세웠다. 새누리당을 ‘구태 정치’로 몰아가면서 신당은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으로 새 정치를 선보이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어제 발표한 야권 신당의 정강정책에는 기초선거 무공천 얘기가 쏙 빠졌다.

민주당 내부 인사들이나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던 기초선거 출마자들이 무공천에 반발하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어제 야권 신당의 새정치비전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김대중 정부 때 지구당을 폐지한 것 못지않게 기초선거 무공천 폐지도 개악이라는 얘기가 있었고 심지어 ‘자해성 개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 같은 야권 일각의 뒤늦은 목소리에 휘둘려 새정치연합이 창당하자마자 약속을 깨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민주당 소속으로 대구시장 출마 선언을 한 김부겸 전 의원은 “지금에 와서 무공천을 다시 뒤집는다면 국민에게 쓰레기 취급을 당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신당이 말하는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이 커지면서 신당 지지율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야권 신당이 기초공천 무공천 원칙을 번복하게 되면 6·4 지방선거의 기초선거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역풍이 불어 광역단체장 선거와 향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손해를 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당이 한번 명분을 저버리면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기는 어렵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무공천 번복’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출발하는 야권 신당의 앞날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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