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정원-검찰 싸우다 간첩 놓치고 對共요원 잡을 텐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5일 03시 00분


검찰에 세 차례 소환 조사를 받은 국가정보원 권모 과장이 22일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 씨에 대한 수사에 초기부터 관여한 핵심 인물이다. 27년 동안 국정원의 대공수사국 요원으로 활동하며 왕재산, 일심회 사건 등 굵직한 대공 수사에 공을 세웠다. 권 과장이 중태에 빠지면서 이번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는 자살기도 직전에 동아일보 기자에게 “인권도 중요하지만 간첩은 잡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을 들여다보는 망루가 다 무너졌다”고 한탄도 했다. 권 과장은 유 씨의 무죄 판결이 불만스럽고, 검찰 수사로 북-중 접경지대의 휴민트(인적 정보망)가 노출되는 것도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검찰이 수사를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조직을 이간질하고 있다”는 항변도 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대공수사요원으로서 자존심이 무너진 데 대한 억울함, 국정원 조직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국정원과의 갈등이 심해지는 양상이다. 권 과장의 자살기도가 알려지자 국정원에서는 검찰의 공소 유지를 도우려다 거꾸로 수사를 받게 됐다며 격앙돼 있다고 한다. 권 과장의 충정에 공감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국가정보기관에서 위조문서를 법정에 제출한 것이 드러난 이상, 여기서 수사를 멈출 수는 없다. 휴민트 보호가 국가안보에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정원의 과오와 무능을 덮는 구실이 돼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증거조작 의혹을 엄정히 수사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검찰은 흔들림 없이 진상을 밝혀내고 국정원은 검찰 조사에 최대한 협조를 해야 한다. 두 국가기관이 갈등을 빚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1심 무죄 선고에 이어 증거조작 의혹까지 겹치면서 현재 진행 중인 2심에서 유 씨에게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검찰과 국정원은 남은 기간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검찰은 과잉수사 논란을 빚지 않도록 정교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대공라인의 잘못만 따질 것이 아니라 ‘우편배달부’ 노릇을 한 검찰 내부 잘못도 철저하게 조사해 책임을 추궁해야만 한다.

간첩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국정원은 증거조작 의혹으로 사법시스템을 뒤흔들었다. 오죽하면 국기 문란이라는 지적까지 나왔겠는가. 국정원은 뼈를 깎는 반성을 전제로 대공역량 강화에 나서야 한다. 검찰도 평생 대공수사에 헌신한 국정원 직원들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강압적인 수사를 해선 안 된다.
#검찰#국가정보원#자살#간첩#유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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