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진중권의 돌고도는 ‘오디세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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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인 딸이 진중권의 책 ‘현대미학 강의’를 사 가지고 왔다. 학교 추천 도서란다. 그래서 훑어보다가 (진중권의 트위터식 표현을 빌리자면) 뿜었다.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책 ‘회화의 진실’은 다음과 같은 시적(詩的)인 말로 끝난다. ça vient de partir. ça revient de partir. ça vient de repartir. 진중권은 이렇게 번역했다. 그것은 막 떠났다. 그것은 떠나기 위해 돌아왔다. 그것은 막 다시 떠났다.

▷올바른 번역은 이렇다. 그것은 막 떠났다. 그것은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것은 막 다시 떠났다. 여기서 그것(ça)은 유령을 뜻한다. 유령은 무덤으로 갔다가 돌아오는(revenir) 것이라고 해서 revenant이라고도 불린다. 하이데거는 고흐의 허름한 구두 그림을 해설하면서 그림 자체에서는 알 수 없는 ‘대지와 농민의 정신’이라는 유령을 불러들이고, 데리다는 그 유령을 다시 떠나보내며 그림은 그림 자체로 보자고 권한다.

▷진중권의 대표작은 그가 그제 출간 20주년이라고 기자간담회까지 연 ‘미학 오디세이’다. 80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글솜씨는 있다. 스스로는 대학 시절 노동자 문화운동을 하면서 노동자를 상대로 글을 써본 경험이 도움을 줬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노동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목사를 아버지로 둔 프티부르주아 집안에서 자라 어린 시절부터 교양물을 접해 본 사람 특유의 박람강기(博覽强記)는 글 읽기에 자극이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

▷‘미학 오디세이’ 이후의 그의 책이 비슷한 데가 많다. ‘미학 오디세이’는 1994년 1, 2권이 처음 나왔다. 3권은 10년 뒤인 2004년 나왔다. 3권에는 한 해 전에 낸 ‘현대미학 강의’의 상당 부분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유령 타령만 해도 하도 여러 책에 출몰해서 지겨울 정도다. 그는 현대 예술의 특징 중 하나로 복제를 들고 있는데 그가 쏟아내는 책들이 색깔만 살짝 바꾼 워홀의 실크스크린을 보는 것 같을 때가 종종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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