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제 “상여금은 근속기간에 따라 지급액이 다르지만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계와 노동계의 최대 현안인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算入) 여부에 대한 다툼에서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기상여금 외에도 기술수당과 근속수당, 부양가족 수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주는 가족수당도 통상임금에 포함시켰다.
대법원은 과거 노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고 해도 근로기준법에 위반되므로 무효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사가 합의했다면 임금채권 소멸기한인 과거 3년 동안의 임금보전에 대해선 소급해서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신의성실 원칙에도 위반된다는 취지다. 다만, 노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지 않았다면 과거 3년 동안의 임금보전액을 소급 청구할 수 있다.
대법원은 여름휴가비, 명절귀향비, 김장보너스, 근무실적에 따라 배분하는 성과급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노사 합의와 기업 형편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과 출산 휴가 육아휴직 급여 퇴직금 산정 때 기준이 되기 때문에 노사 모두에 매우 민감한 문제다.
이번 판결은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 근로자와 퇴직자 296명이 “상여금과 여름휴가비 등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2건의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확정 판결이다. 법원에 계류 중인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160여 건이다.
통상임금 논란은 우리나라 기업의 복잡한 임금체계에서 비롯됐다. 고도성장 시대에 급격히 임금이 올라가자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여기에 적응하려 기업은 기본급 대신 각종 수당을 올리는 편법을 사용했다.
대법원 판결은 통상임금에 대한 법률적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통상임금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려면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근로에 대한 대가성을 갖춰야 한다. 정부가 1988년 만든 지침은 1개월을 초과해 지급하는 상여금이나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생활보조적, 복리후생적으로 지급하는 통근수당과 가족수당 급식비 교육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는 행정 지침일 뿐이고 이번 대법원 판결로 효력을 잃었다. 이번 기회에 기업들도 복잡한 임금체계를 연봉 기준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기업 부담은 커지게 됐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에선 내년부터 매년 8조8663억 원의 인건비가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봤다. 경총은 기업마다 사정이 달라 소송과 분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정부가 하루속히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규 채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마당에 기업들이 채용을 줄여 젊은이들의 취업이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정부와 국회는 노사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해결 방안을 시급히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