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순애]세종시 공무원을 춤추게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
한국행정학회는 지난주 서울에서 ‘윤리적 정부’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필자는 미국 행정학 분과에 참여해 최근 미국 정부의 경제적 딜레마와 효율적 정부 운영을 위한 공무원 인사제도 개혁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중 텍사스대 굿맨 교수가 발표한 ‘해고자유의 원칙(employment at will)’은 한국의 직업공무원제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라 관심을 끌었다. 요지는 미국 주정부에서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채택한 ‘해고의 자유’가 오히려 정실(情實)인사 우려를 낳고 공직봉사동기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기는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노력과 행동으로 정의되며 조직의 성과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윤 창출이 목적이 아닌 공공조직에서 임금이나 성과급 같은 경제적 유인(誘引)은 그리 큰 역할을 못하며, 그런 외재적 동기부여의 효과와 지속성에 대해서도 학자들은 회의적이다. 민간에 비해 경제적 보상이 떨어지는 공공부문 종사자에게는 공직봉사동기와 같은 내재적 요인이 더 중요한 동인(動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이 높고, 공공부문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경우, 공무원에 대한 동기부여는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공무원들의 사기(士氣)는 과거 경제발전을 주도하던 시기의 관료들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도 경험하지 못했던 ‘행정부와의 원격소통’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 서울대 정책지식센터에서 발표한 2013년 공무원 인식조사에 따르면, 세종시로 이전한 부처 소속 공무원의 84%가 세종시로 온 뒤 행정 효율성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고 응답했다. 지난봄 필자가 직접 참여한 포커스그룹 인터뷰에서도 장거리 출퇴근과 출장으로 인해 신체적 피로가 쌓이고, 유관 기관들의 지리적 위치가 다양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부처 실·국장급은 위기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가 곤란하고, 잦은 출장으로 인해 실무진과 직접 머리를 맞대고 업무를 협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고 토로했다. 공직에 입문했다는 자긍심과 기대로 활력이 넘쳐야 할 새내기 공무원들의 심리적 위축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물론 현재 세종시 공무원들이 겪고 있는 고충들은 과거 과천청사와 대전청사가 안착된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여지가 있다. 지난 6개월 동안에도 상당한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불편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 이전은 2014년 말까지로 아직도 진행 중이며, 박근혜 정부 공무원들은 자칫하면 5년 중 상당한 시간을 환경변화에 대한 심리적·육체적 적응에 소진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은 박 대통령이 지켜낸 새로운 역사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가 성공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세종시가 공무원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이자 삶의 터전이 돼야 한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는 국민들과의 접점이 넓은 복지 관련 정책 비중이 높다. 복지정책의 성공은 정교한 정책 설계와 정확한 서비스 전달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세심한 손길과 정성이 더욱 요구된다. 모든 국정 운영을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존하기에는 정책은 너무나 현장 중심적이다. 개별 국정과제는 소관 부처 장관의 리더십하에, 정책의 집행은 실·국장과 담당 공무원과의 접촉을 통해 수행해야 한다.

정부 재창조를 주창하던 데이비드 오스본과 테드 개블러는 정부의 비효율성과 무능은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공무원을 일하게 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직의 생산성은 집단의 팀워크와 협동, 그리고 감독자의 관심에 좌우된다는 1930년대 호손 실험 결과를 새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사회적, 심리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간관계론(human relations)’이 공공부문에서 시사하는 바는 크다.

국민적 관심과 성원, 그리고 대통령의 신뢰는 공무원도 춤추게 할 수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공무원들의 자발적 헌신과 직무몰입(職務沒入)을 유도할 수 있는 리더십이 더욱 절실한 때다.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 psoonae@snu.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