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새누리당, 84조 들여 96개 지역사업 다 하자는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9일 03시 00분


2011년 초 새누리당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 지역은 둘로 쫙 갈렸다. 동남권 신공항의 입지를 놓고서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대구 경북 울산 경남 지역 의원들은 경남 밀양을, 부산 지역 의원들은 부산 가덕도를 신공항 최적지로 밀었다. 1년 뒤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대형 국책사업 유치 경쟁은 한껏 달아올랐다. 결론은 싱거웠다. 그해 3월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는 두 지역 모두 낙제점을 줬다. 100점 만점에 밀양은 39.9점, 가덕도는 38.3점을 받았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신공항 유치 전쟁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꿈틀대고 있다.

어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대정부 규탄대회’ 같았다. 황우여 대표가 직접 나서서 정부가 5일 발표한 ‘지방공약 이행계획’을 정면 비판했다. 황 대표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민생과 복지, 지역 공약은 모두 천금 같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공약의 등가성(等價性)을 잊지 않고 이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한기호 최고위원은 “(정부가) 지방을 홀대하고 있다”며 “지방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고 지역민의 감정을 자극했다. 약 84조 원이 들어갈 지역 신규 사업 96개를 공약대로 추진하라고 정부를 압박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역공약추진특위를 구성하고 ‘16개 시도별 우선순위 공약 리스트’까지 만들어 정부에 들이밀 태세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새누리당의 절박함은 십분 이해한다. 그렇다고 한번 시작하면 수년간 막대한 혈세를 쏟아 부어야 하는 국책사업을 무턱대고 추진할 수는 없다. 수요예측이 빗나가 고추나 말리는 지역공항을 만들고 이용자도 별로 없는 철도와 도로를 까는 건 국가적 손실이다. 지역민에게도 별 도움이 안 된다.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심사할 때마다 삭감 권한을 무기로 ‘쪽지 예산’을 끼워 넣어 예산안을 누더기로 만들기 일쑤였다. 새누리당이 작성한 시도별 공약 리스트에 공약에도 없던 사업이 은근슬쩍 포함됐다니 고질병이 도진 모양이다. 정부의 ‘갑’인 집권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나라살림은 뒤틀린다. 지방이 없으면 국가가 없다지만 국가가 거덜 나면 지방도 없다.
#새누리당#지역사업#지방공약 이행계획#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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