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린이 통학차 비명횡사 없어져야 선진국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4일 03시 00분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는 딸의 말을 듣고 출근했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 뒤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달려갔지만 딸아이는 숨을 거뒀습니다. 아내는 그 충격으로 배 속의 아기마저 유산했습니다. 사고 후 어린이집 차량 운영 실태가 얼마나 부실한지, 이런 사고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알게 됐습니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얼굴도 모르는 지입차 기사를 고용하고, 기사는 차 근처에 누가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차를 출발시켰습니다. 어린이 안전 법안이 통과만 됐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세 살배기 김세림 양이 3월 26일 충북 청주에서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 치여 숨진 지 보름쯤 지나 아버지 김영철 씨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쓴 애절한 편지다. 연중기획 ‘시동 꺼! 반칙운전’을 펼치고 있는 본보가 통학차량 안전 대책의 필요성을 집중 보도하고 ‘세림이법’ 제정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인 어제 정부의 강력한 대책이 나왔다. 정부가 진작 나섰다면 세림 양처럼 어린이들이 통학 차량에 치여 불행을 당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을 것이다.

앞으로 어린이집이나 학원 등의 차량이 안전 법규를 3회 어기면 시설 인가 등록이 취소된다. 안전 의무를 2회 위반한 운전사의 면허는 정지하거나 취소한다. 안전 대책에는 모든 어린이 통학차량 신고 의무화, 광각후사경(廣角後寫鏡) 등 후방 감지장치 설치 의무화, 운전사와 학원장에 대한 안전교육 강화가 포함됐다. 26인승을 기준으로 하는 자가용 영업허용은 학원차의 경우 9인승 이상으로 완화해 음성적으로 운행하던 지입차를 양성화한다.

현행법에서도 어린이 통학차량이 정차해 있으면 옆 차로를 지나는 차량은 일시 정지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범칙금을 올려야 하고 법이 사문화(死文化)하지 않도록 강력한 홍보와 단속이 뒷받침돼야 한다. 모범적인 통학차량에 대해선 보험료를 인하하는 유인책이 필요하다. 영세한 시설은 자원봉사자를 활용해 어린이 안전 승하차를 돕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른들의 무신경, 무관심으로 어린이들이 비명횡사하는 일이 없어져야 진정한 선진국이다.
#어린이 안전#통학 차량#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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