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편지가 사라진 우정사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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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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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우정(郵政) 업무는 유혈이 낭자한 혁명과 함께 시작했다. 1884년 김옥균 등 개화파가 민씨 정권을 무너뜨리고 국민주권 국가를 세우겠다며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켰다. 당시 개화파였던 우정총국 초대 총판 홍영식은 개국(開局) 축하연에 정계 요인들을 초청한 후 이들을 포위해 동지들과 함께 수구파를 살해하고 고종과 왕비를 경우궁에 억류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들은 거사 다음 날 내각을 구성하고 혁신정강 14조를 발표했으나 청(淸)군의 무력 개입으로 근대국가 수립의 꿈은 사흘 만에 좌절됐다. 허망한 ‘3일 천하’였다.

▷우체국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관공서이지만 그 말뜻만은 쉽지 않다. 우(郵)는 역참(驛站), 즉 역말을 갈아타는 곳이라는 뜻이며, 체(遞)는 ‘교대로 번 들다’ ‘전하다’라는 의미다. ‘우체’라는 말이 예전 역말을 통한 릴레이식 통신 시스템에서 비롯된 말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직인수위는 그제 정부조직 개편 2차 발표에서 “우정과 통신 서비스의 연계성을 감안해 우정사업본부를 (정보통신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소속으로 이관한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 초기 우정사업본부가 지식경제부로 넘어오자 이 부처 공무원들은 “이렇게 좋은 것이 있는 줄 몰랐다”며 싱글벙글했다. 3700여 개 우체국, 4만5000명의 직원들이 방방곡곡 촘촘히 깔려 중앙 관료의 영향력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의 업무 중 통신, 즉 우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집집마다 인터넷망이 깔리고 휴대전화가 5200만 대나 보급됐으며 그중 스마트폰은 3000만 대다. 편지는 e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거의 대체됐다. 편지나 전보의 실용적 역할이 거의 끝난 것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우정사업의 대종은 우체국택배다. 페덱스, DHL 등 민간 택배사와 경쟁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08년을 전후해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정부는 우정사업을 통째로 영국의 한 사모펀드에 매각했고, 이후 민영화된 세 나라 우체국이 하나의 기업으로 합병됐다.

▷우정사업본부 업무의 진짜 본류는 금융업이다. 우체국예금 연금 보험을 취급하는데 총자산 100조 원이 넘는다. 하나금융지주에 인수된 외환은행과 비슷한 규모다. 일반 금융기관의 예금자보험 한도가 5000만 원인 반면 국가기관인 우체국은 한도가 없다. 여기다 예금금리까지 높고 부도날 위험이 없기 때문에 우체국에 돈을 맡기는 금융사 직원들도 많다. 이 때문에 민간 금융회사들은 “공정한 경쟁이 안 된다. 우체국은 금융업에서 철수하라”고 주장하는 판이다. 하지만 농어촌이나 벽지에서는 민간 기업이 채산성 때문에 택배 금융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체국에서 무작정 이 기능을 박탈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편지#우정사업본부#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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