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몸집 줄인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도 비서실 옆으로

  • 동아일보

박정희 정부에서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여 동안 최장수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씨는 회고록에서 “내가 비서실장인 시절에 청와대 직원은 227명을 유지했다”며 “기능직 117명을 제외하면 행정관은 110명이었다”고 밝혔다. 청와대 직원은 김영삼 정부 때 377명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498명으로 늘었다. 인수위는 청와대 몸집을 줄이는 쪽으로 조직 개편의 가닥을 잡았다.

곧 발표할 예정인 청와대 개편에서 노무현 정부에서 신설한 정책실장(장관급) 자리는 폐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책임총리제를 도입하면 국무조정실에서 각 부처를 컨트롤할 수 있고,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을 총괄하게 되면 정책실장은 옥상옥(屋上屋)이 될 것이다. 차관급인 외교안보수석과 국가위기관리실장 자리도 없애 국가안보실에 통합하고 사회통합수석도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모양이다. 정부 부처와 중복기능을 갖고 있는 83개 대통령 및 총리 직속 위원회도 폐지하거나 통합할 계획이라고 한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전직 경제 관료는 “청와대에 장관급은 비서실장 한 자리로 충분하다”며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청와대 참모 자리에 고위직을 많이 둘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행정부 장관을 비서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나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수시로 백악관으로 불러 정책을 협의하고 지시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와대 근무=초고속 승진 코스’라는 등식(等式)도 깨뜨릴 필요가 있다. 청와대가 출세 코스가 되는 바람에 청와대로 들어가기 위해 유력자에게 줄대기를 하는 풍토를 없애야 한다. 비서는 어디까지나 비서로 대접하면 된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청와대 업무 공간의 구조 변경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대통령과 참모가 붙어서 일할 수 있도록 청와대 공간을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가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에는 비서실장실과 부통령실 대변인실 안보보좌관실이 바로 옆에 있다. 대통령이 언제든 참모들을 불러 회의를 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수석비서관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500m나 떨어져 있어 걸어서 8분이나 걸린다. 본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이 출입문에서 대통령 의자까지 15m나 떨어져 있는 것도 위압적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이 ‘구중궁궐(九重宮闕)’로 불리며 참모들과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불통(不通)의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갑갑해서 비서동이 있는 위민관으로 내려온다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청와대#대통령 집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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