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2030, 5060의 ‘솔직 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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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이 끝났지만 온라인은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일부에선 선동 움직임까지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상처는 남아 있습니다. 서로 다른 후보를 찍은 부모자식 간에 대화가 실종되고 분위기가 냉랭한 집들이 많다고 하네요. 세대 간 갈등이 생각보다 심한 것 같습니다. 통합의 출발은 서로에 대한 차이를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봅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마음을 닫기 전에 열린 마음으로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 보는 게 어떨까요. 이번에 투표를 한 2030과 5060세대 중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생활인들의 솔직 토크를 위해 두 분에게 원고를 청했습니다. 저희의 기획 취지에 선뜻 동의해 좋은 글을 보내 왔습니다. 세대통합을 위한 작은 출발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 나는 왜 문재인을 찍었나… “잊지마시라, 우리는 반대 아닌 미래세력이란 걸”

정지은 문화평론가
정지은 문화평론가
춥다. 몸도, 마음도.

캐럴이 울려 퍼지고 화이트크리스마스였건만 마음은 시리기만 하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악몽 같은 현실은 그대로고, 집 나간 정신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멘붕(멘털 붕괴)이다. 많은 표현이 있지만 대선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두 글자만큼 내 심정을 잘 표현한 글자를 보지 못했다. 평소의 멘붕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뿐만이 아니다. 신문, TV,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모두를 끊고 칩거 상태인 사람이 부지기수다.

“네가 하도 난리쳐서 문재인 찍었는데 떨어지고…이럴 거면 박근혜 찍게 놔두지, 책임져!” 엄마의 투정 섞인 문자에 답장할 기력도 없다. 2030이 승리를 예감하며 투표인증샷 놀이를 하는 동안 아파트 값과 노후에 대한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 5060은 SNS 대신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선거를 독려하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몰표를 던졌다.

더 절망적인 것은 ‘은퇴계층이 생산가능계층의 삶을 결정하는’ 구도가 앞으로도 몇십 년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어차피 우린 안 될 것이니 마음껏 비뚤어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결과를 보려고 지난 정부 5년을 견뎠나 허무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5년 전에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이렇게 충격이 크진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와 문재인 둘 중 누가 돼도 좋다” “찍을 사람 없어 고민했던 2007년 대선에 비해 이번 선거는 얼마나 행복하냐”고 우리끼리 좋아하며 웃던 선거가 아니었던가. 나도 친구들도 “드디어 우리도 오바마처럼 멋있는, 세계 어느 무대에 내놓아도 사진발 잘 받는 미(美)중년 대통령을 갖게 된다”고 반가워했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그의 선언은 ‘아프니까 청춘’을 외치는 어느 멘토보다도 믿음직했다.

그에 비해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정치인일 뿐이었다. 부모를 잃은 박 후보가 불쌍하다고 혀를 차는 부모님 세대는 이해불가 영역이었다. 불쌍한 것과 대통령 직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든 ‘워킹 푸어(working poor)’인 2030세대는 잘살아 보자고 앞만 보고 달리던 시대의 감수성을 가진 후보를 저성장 경제위기 시대의 리더로 선택할 수 없었다. 추억의 소품이 현실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연극무대에서 보는 박정희 대통령 사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던 프랜차이즈 ‘새마을식당’마저 불편해졌다.

올드보이들의 대귀환, 과거사에 대한 매끄럽지 못한 사과, 초라한 의정활동, 잦은 말실수, 친구 한 명 없는 개인적 삶까지…(박근혜 후보에게) 걸리는 구석이 많다고 생각하던 차에 세 차례 TV 토론은 쐐기를 박았다.

대선 결과에 대해 “한국인들은 독재에 맞서 싸워 자신들에게 민주주의를 선사한 인권변호사 대신 독재자의 딸을 선택했다”는 외신 분석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2030세대가 박 후보를 찍지 않을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후보는 최선이라기보다는 최악을 막기 위한 차선의 선택지였다. 신사라는 별명에 걸맞은 절제된 태도, 버려진 고양이 ‘찡찡이’에게 자연스럽게 눈 맞추는 소탈함 등 문 후보 개인의 매력도 한몫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우리 곁에 와 있던 미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문 후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던 소설가들을 선관위가 고발했다는 뉴스가 들리고, 친구는 정부에 비판적인 페이스북에 ‘좋아요’ 누르는 것도 무섭다고 걱정이다.

나 역시 이번 원고청탁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문재인 찍었다고 써도 될까? 쓰면 불이익당하지 않을까?”란 두려움이었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당선인의 첫 인사인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인사들을 ‘정치적 창녀’라고 부른 바 있다. 그의 발언이 문 후보를 찍은 48%의 국민을 향한 말은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어쨌든 문 후보를 찍은 유권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 그 수석대변인을 바라보는 문 지지자들의 심정이 어떨지.

어르신들에게 문 후보가 외치던 새로운 시대는 ‘과거에 대한 부정’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미래에 지금껏 고생한 당신들의 자리는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되셨을 것이다. 하지만 뒤집으면 같은 얘기다.

지금 2030들은 집권세력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당하거나 배제당할까 봐 두렵고 무섭다. 이 두려움을 어떻게 다독여 주느냐가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5년, 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에 따라 ‘내 꿈과 네 꿈이 함께 이루어지는 나라’는 가능해질 것이다. 잊지 마시라, 문 후보를 지지했던 투표자의 48%는 당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미래세력이지, 반대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정지은 문화평론가

:: 필자 소개 ::

31세(1981년생). 회사를 다니며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푸어 공화국, 대한민국’이란 글로 창비 사회인문학평론상을 수상했다.
■ 나는 왜 박근혜를 찍었나… “잘살아 보세∼들으면 눈물나는 게 부모세대다”

송미령 주부·도예가
송미령 주부·도예가
선거 날 투표를 하고 나오는데 직장인으로 보이는 두 젊은이가 말하는 걸 들었다. 이번에는 누가 되든지 세금을 많이 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나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양쪽 후보가 경쟁적으로 엄청난 복지공약을 쏟아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나랏빚도 많은데 어디서 그 많은 돈을 조달할지 걱정되었다. 이번에 내가 박근혜 후보(지금은 당선인)를 찍은 이유는 특정 공약 때문도 아니고, 같은 여자라고 무조건 찍은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박 후보를 내세운 새누리당의 가치관이 내 정서 및 상식과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국가안보와 국경수호에 대한 단호한 의지,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에 대한 존중, 대미관계를 비롯한 외교에 온건한 태도, 최근 역사에 대한 평가 등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가 생각하는 진보세력은 그동안 각종 시위에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사회를 뒤숭숭하게 했으며, 국제적 약속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여 국가의 위상을 흔들고, 아이들에게 안보와 역사를 잘못 가르쳐 적과 동지를 혼동하게 했고, 국민 세금을 북한에 퍼 주었으며, 부모 세대를 꼴통으로 여기게끔 자식 세대를 부추겨 세대 간에 이간질을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국가재정을 탕진하고 과도한 세금으로 내 노후생활을 위협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따라서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도 그랬고 이번 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을 찍었다. 후보가 누가 나왔어도 나는 똑같았을 것이다.

나는 1950년대에 태어나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서러운지 체험한 사람이다. 학교급식으로 나온 원조 빵을 먹으며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노래를 외치던 세대이다. 아직도 이 노래를 읊조리면 눈물이 핑 돈다. 골목 어귀에서 떼를 지어 구걸하던 상이군인들과 봇짐을 이고 행상을 하던 전쟁미망인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를 도와줄 정도가 된 것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내 짧은 생에서 나라의 기적적인 변화를 목격하게 된 것이 가끔은 꿈을 꾸는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도록 터를 닦아주신 부모님 세대에 고마움을 바친다. 물론 국가가 고속 성장하는 동안 생긴 그늘에서 생고생했던 분들의 아픔에도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며 그 시대를 잘 이끈 정치 경제 리더들의 공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나 새마을운동은 외국에서도 본받으려는 모범 사례이다. 그런데 일부 국민이 왜 업적을 부정하고 모욕하려는지 안타깝다. 이번 선거 기간에 단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란 이유로 박근혜 후보가 모욕을 받았을 때 개인적인 잘못이나 정치적 능력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예를 모독하고 업적을 부인하라고 다그치는 것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다고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문재인 후보가 선거 패배를 인정할 때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것을 TV를 통해 들었다. “국민이 무식해서 선거에 졌다”라고. 소위 진보를 외치는 젊은이들에게는 5060 어른 세대가 무식하게 보였나 보다.

사회의 낮은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좀더 나은 복지와 분배를 외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입으로만 약자 편에 서고 실제로는 온갖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젊은이들에게 진보를 유행시키는 일부 사회지도층을 보면 가소롭다. 전 세계에서 몰락해 가는 사회주의를 대한민국에서 좀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신봉하는 건 무슨 발상인지.

무조건 ‘강남타령’을 하며 굳이 강남에서 전세를 사는 지식층 부부인 40대 친척이 있다. 그들이 흥분하며 진보를 지지할 때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들 부모도 보수성향이고 그네들은 부모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편이다. 당연히 보수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들도 결국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다행히도 자식들과 정치적 일치를 이루었지만 내 주변 많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후보 지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걸 보았다. 평소에 충분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선거 때만 되면 서로를 무시하고 강요하고 분개하는 것은 아닌지.

경제적으로는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부모가 말이라도 하고 싶어 건넬 때 “당신들은 뭘 모른다”며 입을 다물어 버리면 부모는 너무 슬프다. 얘들아, 부모 자식 간에 말 좀하고 살자. 선거에 졌다고 울고불고 하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하겠다. “지금 상황이 어려운 건 세계적 현상이다. 정당을 갈아 치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자. 정치선동꾼들에게 휘둘려 귀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젊은이들의 싱싱한 시선을 과거로 돌리지 말고 세계로 돌려 보자.”

송미령 주부·도예가

:: 필자 소개 ::

55세(1957년생). 이화여대 철학과와 단국대 도예과(학사), 서울산업대 도예과(석사)를 졸업했다. 2005년 한전갤러리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채널A 영상] 박근혜 당선으로 깨진 ‘대선 3대 징크스’

오피니언팀 종합 reporter@donga.com
#대선#문재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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