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새해 예산안 심의가 어제 재개됐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기간에 내세운 중소기업 지원과 서민 일자리 창출 등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6조 원을 증액해 새해 예산을 짜기로 했다. 그러나 기존의 정부 예산안도 4조8000억 원의 재정적자를 낸다는 전제로 편성된 상황에서 6조 원을 더 늘리면 적자의 규모는 그만큼 커지게 된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내년 경기부양을 위해 10조 원 규모의 추경 예산을 따로 편성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려면 수년의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당분간 정부의 세수(稅收)와 세외 수입이 늘어날 여지는 별로 없다. 증세 없이 새해 예산을 늘리려면 국채를 찍어 내는 방법밖에 없다. 이 경우 나랏빚은 크게 불어난다. 반면에 경제위기 속에서 지나치게 긴축예산을 편성하게 되면 성장이 위축되고 서민 고통은 더 심해진다. 경제위기 속에서 각국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다.
지난달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내총생산(GDP)의 7%까지 재정적자가 치솟은 상황에서도 코앞에 닥친 ‘재정절벽’(재정지출이 줄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럽의 침체와 실업이 심각한 것도 ‘유럽연합(EU) 규정상 재정적자 상한 폭이 GDP 대비 3% 아래로 묶여 있어 꼭 필요한 정부 지출을 못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역시 국가예산을 편성할 때 ‘긴축’과 ‘지출’ 사이의 균형 감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새 대통령이 취임 직후 국정 철학을 펴기 위해 공약을 조속히 이행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경기의 하강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질 경우 저소득층 지원과 실업자 취업 대책 등 생산적 복지와 연결되는 공약부터 추경예산을 편성해 우선적으로 집행하는 일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주택 건설 등 토목공사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경기 부양이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정부 예산안 속에 들어 있는 ‘쪽지예산’(국회의원의 선심성 지역 예산) 같은 불요불급한 지출부터 걸러 내고, 0∼2세 무상보육 전 계층 지원 같은 보편적 복지를 재검토하는 등 예산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박 당선인도 “예산 낭비를 줄여 복지 예산을 충당하겠다”라고 밝혔다. 국가 예산을 무조건 늘리기보다는 먼저 낭비 요인을 막는 일이 중요하다. 새 정부가 시작부터 빚을 낸다면 정작 위기가 닥쳤을 때 대처할 힘이 바닥날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