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한국 경제의 세계 15위,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주도하며 경쟁국들이 부러워하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별 인기가 없다.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휘몰아친 ‘대기업 때리기’는 정치권이 경제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표를 모으기 위해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은 측면이 있으나 상당수 국민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와 같은 한국의 간판 대기업이 세계 무대를 뛰어다니며 국부(國富)를 늘려온 덕분에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지 않고 중소기업은 판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대기업과 사회의 공생(共生) 고리가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다. 세계화와 지식정보화로 인해 대기업이 벌어들이는 과실이 국가 경제의 차가운 윗목을 덥히는 효과는 예전만 못하다. 일부 대기업과 기업인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약자를 딛고 자신의 배를 불리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와 균등한 기회, 정당한 보상을 중시하는 경제 원칙은 앞으로 더 엄중해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불법과 편법을 감시하는 행정 사법 입법부의 책임도 무거워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에 “대기업 중심의 경제 틀을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동반 발전하는 경제시스템으로 만들겠다”라고 선언했다. 대기업은 앞만 보고 달려온 과거를 되돌아보고, 사회와의 간극을 좁히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아야 한다.
국가 경제의 중핵인 대기업과 기업인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가 장래는 어둡다. 기업이 신뢰를 잃고 위축되면 경제는 뒷걸음질을 친다. 경기침체와 선거 전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투자 위축이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기업은 어려울 때일수록 한발 더 뛰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믿음을 얻어 내야 한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들은 “앞으로 수년간은 일자리를 중시하는 ‘정치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기업도 이제는 일자리 창출을 경영의 전략적 고려 요소로 봐야 한다”라고 주문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최근 통화정책을 실업률과 연계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정치권과 사회적 압력에 떠밀리기 전에 일자리를 늘리는 신사업을 발굴하고 설비와 인적자원 투자에 적극 나서는 기업이 민생(民生) 시대의 승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