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깡통주택’ 공적자금 투입 신중해야

  • 동아일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 100명 가운데 4명은 집을 경매에 넘겨도 빚을 다 갚기 어려운 ‘깡통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신용등급이 낮고 여러 금융기관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부실 대출의 ‘고위험군’에 속한 하우스푸어는 전국적으로 23만 명에 이르렀다. 저신용 다중(多重)채무자는 상환 능력을 거의 소진한 데다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집값이 더 내려가면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질 공산이 크다. 가계 파산 가능성이 높은 1개월 이상 연체자와 담보가치인정비율(LTV) 80% 초과 대출자도 각각 4만 명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도 대출금에 못 미칠 정도로 주택 가격이 떨어져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화에서 비롯됐다. 즉 깡통주택 문제였다. 빚을 못 갚는 가계가 늘어나면 은행이 부실화하고, 신용이 경색되면서 경제 전체의 위기로 번진다. 이런 시나리오를 피한다고 해도 가계의 과중한 이자 부담은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를 가져오는 요인이 된다.

가계부채 문제가 커지자 금융당국과 은행은 주택대출 원리금을 장기간에 걸쳐 나눠 갚게 해주는 프리 워크아웃(사전 채무조정) 제도를 내놨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도 주택 지분의 일부를 공적 금융기관에 매각해 대출을 상환하는 하우스푸어 대책을 대선 1호 공약으로 발표한 바 있다. 깡통주택 문제의 연착륙을 위한 부채 구조조정은 필요하지만 공적자금 투입은 신중해야 한다. 하우스푸어 가운데 저소득층인 소득 1분위 가구는 4.6%에 불과하다. 상당수는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빚을 내 구입한 중산층 이상의 가구다. 깡통주택 보유자 19만 명 중 18만 명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주택 소유자와 실거주자가 다른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이 서울 강남 지역이다.

깡통주택을 달리 표현하면 ‘대출금이 기대 경락액, 즉 시가 대비 낙찰가 비율을 초과했다’는 뜻이다. 올해 주택의 평균 경락률은 76%다. LTV 상한이 60%인 상황에서 많은 주택대출이 이 비율을 크게 넘겼다. LTV 초과 주택이 급증한 것은 집값 하락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느슨한 LTV 관리 탓도 있다. 단기 실적을 올리기에 급급해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을 키운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무리하게 대출을 늘려 수익을 내다가 부실이 나면 공적자금에 손 벌리는 악순환을 계속 용납해서는 안 된다.
#깡통주택#공적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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