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MB, 중동선 ‘왕실 양고기’ 대접받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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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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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 기자
이승헌 정치부 기자
21일 오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인근 상공. 칼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뒤 오찬을 겸한 기자간담회를 위해 헬기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던 이명박 대통령은 휴대전화 한 통을 받았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자였다.

이 대통령이 오찬간담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왕세자가 왕실 전용 양고기를 보내주겠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맛본 이 양고기는 누린내도 없고 닭고기를 먹는 듯한 프리미엄 양고기였다. 이 대통령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외교 역량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식사 후 마이크를 잡더니 예정시간을 넘겨 20여 분간 ‘연설’을 했다. 요지는 임기 5년간 자신은 UAE 원전사업 등 쉴 새 없이 비즈니스 외교를 펼쳤지만 차기 정부에선 걱정스럽다는 것. 원전사업에 ‘빅3’ 대선후보가 모두 부정적인데, 경쟁국들은 속으로 반가워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후임 대통령이 자신만큼 비즈니스 능력을 보여줄지도 우려했다. 칼리파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한 이 대통령은 “중동 국가 정상이 처음으로 한국 훈장을 받은 것이다. 과거에는 중동 국가들이 우리가 훈장을 주려 해도 거부했는데 (내 임기 중에 중동 지역에서) 한국의 위상이 많이 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이 대통령의 자평을 들으면서 ‘왜 국내 정치에서는 저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임기 초부터 ‘소통 부재’ 지적을 받아 온 이 대통령은 임기 말로 갈수록 비즈니스 외교에 더 집중했고 그만큼 국내 정치와는 소원해진 게 사실이다.

여권의 고질병인 친이-친박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정치적으로 고립되면서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했다면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고립을 비즈니스 외교로 해소하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이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비즈니스 외교로 승부를 걸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방문이 임기 중 마지막 해외 순방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일하다 보면 갑자기 또 나가야 될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진짜 임기 말이다.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시선을 안으로 돌려 그동안 소홀했던 국내 정치와의 소통에 힘쓰면서 임기를 잘 마무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부다비에서

이승헌 정치부 기자ddr@donga.com
#이명박 대통령#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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