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5일 미국 대선후보들의 막판 유세 기사를 옆으로 제치고 1면 머리기사로 미국이 중국 투자자들을 초청해 어떻게 칙사 대접을 했는지 소개했다. 눈에 띄는 것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투자 유치에 나섰다는 대목. 그는 2001년 집권하면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competitor)’라고 경계했던 정치인이다.
투자단은 대기업도 아니고 허베이(河北) 성에서 11개의 전자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쑨(孫)모 씨 같은 중소기업인 6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열흘간의 ‘투자 여행’ 중 부시 전 대통령과 플로리다, 텍사스 주지사 그리고 100여 명의 미 기업인을 만났다. 워싱턴에서는 국무부가 마련한 만찬에도 초대됐다.
미 대선에 출마한 민주 공화당 두 후보는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대중(對中) 강경파였던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은 투자를 끌어들이려고 애쓰고 있다. 미중 간 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결과가 판명될 미 대선과 8일 막을 여는 중국 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권력이 개편된 이후 중국과의 신(新)패권 경쟁을 앞둔 미국의 현주소는 이처럼 우울하다.
미국이 어떤 나라였나. ‘미국 쇠망론’으로 번역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저서 원제는 ‘우리도 그랬었지(That Used To Be Us)’다. ‘얼마 전까지 미국은 어떤 산업을 보더라도 세계 최고의 국가였다.’ ‘미국은 자본과 재능을 끌어모으는 자석이었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미국이 냉전 종식 이후 새 세계에 대한 오판과 극단적인 양당 파당 정치의 폐해로 과거 개발도상국에나 훈수했던 ‘충격요법’이 필요한 지경이 됐다고 진단한다.
미국이 위기의 책임과 원인을 중국에 돌릴 경우 주요 2개국, 즉 G2로 불리는 미중 양국의 전략적 패권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과거 대부분의 패권국가 간 파워 시프트에서와 같은 전쟁이 나지는 않더라도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의 핵심 이론가인 애런 프리드버그 프린스턴대 교수(국제정치학)는 “미중 간에는 상호불신의 역학관계가 자리 잡고 있으며 상황이 변하려면 중국에 민주정권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산당 일당 지배가 계속되고 철저한 비밀 속에 최고지도부가 선출되는 중국에서 서구식 민주정권 수립은 요원해 보인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저서 ‘중국 이야기’에서 미중 관계 전망에 대해 ‘양국 모두 덩치가 너무 커서 지배를 받을 수 없고 너무나 특별해서 변할 수 없으며 서로에게 너무나 필요해서 상호 고립을 감당할 처지도 아니다’면서 양측이 상호 필요성을 인지해서 함께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아주 포괄적이고 논란도 있을 수 있지만 ‘미중 외교의 살아있는 전설’의 지혜와 고뇌가 엿보인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간에 나타나는 새로운 지각변동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가장 변화무쌍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최근 아시아를 중시하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이 맞대응하는 구도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한국은 대선을 불과 40여 일 앞둔 시점에서도 외교 안보 논의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온다. 강대국들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에서 번영은 둘째 치고 생존을 위해서라도 외교적 지혜가 요구되는 나라에서 다음 국가 지도자를 선택하는 대선이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흘러가도 되는 것일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