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보호청(EPA)이 2010∼2012년 미국 시장에서 팔린 현대·기아자동차 일부 차종의 연료소비효율(연비)이 과장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EPA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20개 차종 중 제네시스 쏘렌토 쏘울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 등 13개 차종의 연비가 실제보다 높게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수정된 연비를 반영하면 현대·기아차 미국 판매 차종의 평균 연비는 3% 정도 떨어지게 된다.
현대·기아차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소비자 보상계획을 즉각 내놨다. 보상금액은 3년간 팔린 90만 대에 대해 8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보상금액은 크지 않지만 소비자 신뢰 하락이 예상된다. EPA가 벌금을 물리고 연방거래위원회(FTC)까지 과대광고 조사에 나서면 사태가 악화할 수도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사태에서 보듯이 미국 시장은 소비자 권익이나 안전을 침해하는 제조회사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현대·기아차가 EPA 조사에 앞서 제기된 소비자 민원에 적극 대처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1980년대 ‘싸구려 자동차’ 소리를 듣던 현대·기아차는 품질 경쟁력을 끌어올려 세계 4위의 자동차 회사로 도약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미국 시장에서 100만 대 넘게 자동차를 판매하는 성과도 올렸다. 현대·기아차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유럽이나 미국 시장에서 받는 견제도 강해지고 있다. EPA는 “현대·기아차의 연비에 대한 소비자 민원이 제기돼 조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EPA가 연비 조정을 명령한 것은 두 차례에 불과하고 모두 단일 모델에 한정된 사안이었다. 이번처럼 특정 자동차 회사를 타깃으로 한 대규모 조사는 없었다. 미국 자동차시장 보호를 위한 견제심리가 작용한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