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식이 부양 안하는 老부모는 국가가 책임져야

  • 동아일보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7일 정책비전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거제에 사는 할머니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탈락해 자살했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안 후보가 언급한 할머니는 7월 말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탈락하자 8월 초 거제시청 화단 앞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이 할머니는 딸 부부의 소득이 800만 원을 넘어 수급 자격을 박탈당했다. 현실에 맞지 않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계속 존치하다 보면 이런 비극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현 제도는 대상자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이고 자식 등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양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받아야 수급 자격을 준다. 국가가 가난한 노인을 도와주되 가족의 부양책임도 인정한 ‘한국형 복지제도’다. 출범 당시에는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자식에게 부양 의무를 요구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가정 해체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11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부모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2005년 92.8%에서 77.6%로 줄었다. 조사 대상의 50%는 ‘배우자의 부모는 가족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자식이 노(老)부모를 부양하는 전통적 가치의 붕괴와 함께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지난해에도 수급 자격이 박탈된 노인 2명이 자살했다. 장애인 아들에게 수급 자격을 주기 위해 일용직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재정 누수(漏水)를 막기 위해 부정 부당 수급자를 가려내는 일 못지않게 제도 결함으로 인한 비극을 막는 일도 중요하다.

일련의 사건들은 복지의 책임 소재가 점차적으로 가족에서 국가 쪽으로 옮겨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거쳐 관련 재정을 확보할지가 큰 숙제다. 올해 8월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40만 명에 예산은 연간 8조 원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117만 명이 추가로 수급자로 지정되면 연간 5조7000억 원의 예산이 더 필요한 것으로 최근 집계됐다. 수급 자격을 얻기 위해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국가가 빈곤 노인의 생계를 책임질 경우 역으로 가정 해체가 가속화할 수도 있다. 대선주자들은 재정 조달 방안을 포함한 구체적인 해법을 밝히고 국민 선택을 받아야 한다.
#자식 부양#노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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