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싸이 “미치면 이기고, 지치면 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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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나는 그날 서울광장에 밀려든 군중을 힘겹게 비집고 들어가 무대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서 싸이의 공연을 관람했다. 바로 옆의 10대 소녀들은 싸이의 몸동작에 맞추어 폴짝폴짝 뛰다가 내가 돌아보면 아버지한테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 섰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서 넥타이 정장 차림의 50대 ‘아저씨’는 나뿐이었다. 넥타이를 풀어 머리에 둘렀더라면 소녀들이 느끼는 위화감(違和感)이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설사 그들이 딸이었다고 하더라도 혀를 끌끌 찰 뜻은 전혀 없었다. 어른들의 문화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이 아닌가.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어머니들과 외국인도 눈에 많이 띄었다.

싸이는 수만 군중을 한 몸처럼 요동치게 하는 강력한 ‘끼’를 발산했다. 그는 데뷔 12년 됐지만 공연활동은 고작 2년 남짓 했다. 한 번은 국가에서 금지한 담배(대마초)를 피워 방송출연 정지를 당했고, 그 다음엔 대체복무와 군대를 합쳐 5년 동안 활동을 못했다. 젊은 나이에 곡절과 풍파를 겪어서인지 겸손한 태도로 팬들의 성원에 감사할 줄 아는 가수였다. 그는 “이번이 나의 마지막 공연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토로했다. 그것이 바로 관중을 매료시키는 비결일 것이다. 싸이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자 관중 속에서 일제히 “울지 마” “울지 마”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유튜브 타고 ‘넘사벽’ 뛰어넘기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7년 역사상 최단 시간에 가장 많은 조회수 기록을 세웠다. 싸이는 76일 만에 3억 뷰를 기록했고 매일 1000만 뷰씩 늘어나 18일에는 5억 뷰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1936년 시작한 빌보트 차트는 매년 1위 곡이 몇십 곡씩 쏟아진다. 유튜브 조회수 1위는 빌보드 1위보다 영예롭다고 할 수 있다. 한구현 한류문화연구소장은 “현재 추세로 한 달 후면 강남스타일이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7억8800만 뷰)를 제치고 유튜브 조회수 1위에 등극할 것이 확실하다”고 예측했다.

강남스타일은 인터넷 시대의 총아 유튜브를 타고 세계적인 문화 현상이 됐다. 톰 크루즈와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세계적인 대스타가 싸이에게 손짓을 하고, 브라질 최고의 축구스타 네이마르가 2012년 남미 슈퍼컵 우승 세리머니로 말춤을 추었다. 재미, 유머, 반전(反轉)의 코드로 교직된 동영상과 다섯 살짜리도 따라 할 수 있는 경쾌한 말춤이 아니었으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유명해지고 나선 인터뷰를 기피하며 신비주의 전략을 쓰는 연예인도 많지만 싸이는 무대에서 소주 병나발을 불고 위악적(僞惡的)인 면모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부모님이 나를 부르는 애칭이 ‘무식한 놈’이다. 독서량이 극미해 노래 가사도 주워들은 말로 만든다.” 싸이의 노래 가사에서 때론 B급 비속어가 튀어나오지만 청소년들의 대화는 그보다 훨씬 더 나간다.

박재상(싸이의 본명)은 대를 이을 사업가로 만들려는 아버지와의 엇나가기를 추동력(推動力)으로 오늘의 성공을 이루었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시대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과 저항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성 관습에 젖은 아버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만 늘 역사는 새로운 세대의 승리로 귀결됐다. 아버지 세대엔 미국과 유럽의 문화와 기술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격차를 줄이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였다는 의미다. 싸이는 넘사벽을 단숨에 뛰어넘어 버렸다.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착한 아들이었다면 오늘의 싸이는 없었을 것이다. 싸이는 청소년 시절 담배를 피우다 아버지에게 걸리자 “아버지부터 끊으세요”라는 말로 대들었던 반항아였다. 싸이가 2005년 ‘아버지’라는 사부곡(思父曲)을 발표하면서 부자의 화해가 이뤄졌다고 한다. 곡도 좋지만 가사는 더 좋다. 어머니 노래만 있고 아버지 노래는 없었는데 싸이가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좋은 일을 했다. 말도 ‘더럽게 안 듣고’ 반항만 했던 자식이 이룬 놀라운 성과에 대해 아버지의 소감을 듣고 싶다. 세상의 아버지들이여, 자식의 반항과 순종을 새 시대의 관점으로 평가할지어다.

아버지와의 불화가 성공 코드

성공한 부모들은 자기 세대의 가치관에 맞는 좋은 직업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튜브가 세상을 바꾸어 놓는 것처럼 기술의 발전과 세상의 변화는 너무 빠르다. 부모가 오늘 자식에게 강요하는 직업은 가까운 미래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차라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직업을 추구하게 놔두면 보수나 사회적 인식이 낮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서울광장에서 쏟아낸 싸이의 어록에서 가슴에 와 닿는 말은 “지치면 지는 겁니다. 미치면 이기는 겁니다”였다. 싸이는 “나는 딴따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가수다. 딴따라가 코리아의 이미지를 세계에 선양하는 시대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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