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헌법재판소가 최근 유로존 구제기금에 대해 조건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은 독일 내부의 찬성자와 반대자, 그리고 독일 정부와 위기 국가들 사이의 갈등을 절충한 것이다. 유로를 구제하되 실패할 경우 자손대대로 빚쟁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위기 국가들은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 경제 위기는 유럽 각국의 문화 차이가 경제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어서 근본적 해결이 쉽지 않다.
유럽은 중세 이래 알프스 산맥을 중심으로 남부와 북부 사이의 문화적 정치적 차이가 생겨나, 현재까지도 이질성이 지속되고 있다. 우선 이탈리아만 해도 그렇다. 독일의 시인 괴테와 조각가 리첼은 이탈리아에 사랑과 더불어 실망감도 함께 표현했다. 오늘날 독일인들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부러워하지만 그 낮은 신뢰도에는 실망한다. 2011년 이탈리아는 개혁을 약속하고 유럽연합에서 지원금을 받았지만, 고맙다는 말만 하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런 불신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탈세와 부정부패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에서 세금 내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는다. 작년 한 해 탈세액만 우리 돈으로 약 180조 원이나 된다. 남부의 마피아가 범죄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국내총생산의 7%에 해당한다. 연줄에 따른 낙하산 인사도 문제다. 지난번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과 가까운 여자들을 장관, 국회의원, 유럽의회 의원으로 만들기도 했다.
유럽 경제 위기의 진원지 그리스는 또 어떤가. 그리스는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 때와 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절망감에서 자살을 택한다. 그리스 위기의 근본 원인도 탈세와 부정부패다. 부자들은 탈세하고 하류층만 세금을 낸다. 한 해 탈세액 67조 원의 반 정도만 걷혀도 국가재정은 문제가 없다. 무자격자도 연줄만 있으면 공무원으로 임용된다. 좌파 단체들은 극단적 행동으로 경제활동을 자주 마비시킨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공통적인 문제는 탈세와 부정부패, 그리고 낮은 신뢰도다. 이들이 만약 재정 지원만 받고 유로존을 탈퇴해 버리면, 독일은 그 빚을 고스란히 떠맡을까 걱정한다.
남·북부 유럽 중간에 있는 프랑스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지 오래다. 프랑스는 그 어느 나라보다 좌우 진영이 분명히 나뉘어 있다. 일반 시민, 정치인, 대중 매체도 자신이 좌·우파 어디에 속하는지 분명히 안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의 정책을 바로 뒤집어 놓는다. 니콜라 사르코지가 개혁한 연금 법안을 새로 대통령이 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다시 되돌려 놓았다.
여기에 정치권이 모든 경제 문제에 관여해 기업의 자율권은 별로 없다. 적자에 허덕이는 자동차 회사들이 2009년에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려고 하자, 정부는 우리 돈으로 4조5000억 원이나 되는 지원금을 주면서 해외 이전을 막았다. 지난 30년간 푸조자동차는 일자리가 반으로 줄고 적자에 허덕였다. 그럼에도 노동운동 덕분에 지난 10년 사이에 실질 임금이 8% 상승했다. 흑자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독일 자동차 회사의 임금은 이 기간에 겨우 1.6%가 늘었을 뿐인데 말이다.
유럽 위기의 원인은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다. 유럽 문제는 우리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우리 사회도 유럽 국가와 여러 공통점이 있다. 프랑스처럼 좌·우 진영 논리에 빠져 있으면서, 정치권은 경제문제에 끊임없이 관여한다. 기업 성과와 상관없이 정치계와 노동계는 임금 인상에 앞장선다. 탈세와 부정부패, 지연·학연·혈연에 따른 인사, 또 노조의 극단적 행동도 유사하다.
유럽 국가들의 이런 잘못을 우리가 개선하지 않는다면, 언제 그 위기가 우리에게도 닥칠지 모른다.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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