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요한 일들은 언제나 세 가지로 구성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아시는지. ‘의·식·주, 아침·점심·저녁, 금·은·동, 머리·가슴·배’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인생의 즐거움도 셋으로 요약되는데, 머릿속에 불현듯 ‘토크(TALK) 플레이(PLAY) 러브(LOVE)’ 세 단어가 떠올랐다면, 삼성전자의 애니콜 신화를 기억하는 분이다.
2007년 애니콜 슬로건인 ‘대화하고(TALK) 즐기고(PLAY) 사랑하라(LOVE)’는 진보된 기술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강조했다. 사람들은 함께 대화하고, 더불어 즐기고, 서로 사랑하는 일에 신기술을 쓴다. 지난해 11월 15일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MAA)에서 개막한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기증품의 첫 국외순회전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또한 인생의 3요소가 진리임을 증명한다. 세상에 더없는 보물이라도 모아서 아끼고 나누어야 빛을 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21년 4월 이 선대 회장 유족이 기증한 고인의 수집품 중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 주는 대표작 172건, 297점을 선보인다. 삼국시대 금동보살삼존입상과 금으로 쓰고 그린 고려시대의 대방광불화엄경 권15, 조선 초기 왕실의 불교 신앙을 한글로 적은 월인석보 등은 1000년 이상 이어진 한반도 불교 문화를 보여 준다. 고려 비색의 진수를 갖춘 청자 상감운학문 완과 조선 도예를 대표하는 천·지·현·황이 새겨진 백자 등은 아름답고 특별한 것을 사랑하고 귀히 여겼던 우리의 전통을 증명한다.
비가 걷힌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대기를 먹의 농담만으로 그려낸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고, 온 우주의 생명력을 전달하는 일월오악도를 마주하면 단일한 미감으로 요약되지 않는 우리 문화의 다채로움이 느껴진다. 채용신, 변관식, 백남순, 박생광에서 박수근, 이응노, 박래현, 김환기로 이어지는 24점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은 20세기 이후 한국의 미술가들이 오랜 전통 위에서 서구 예술을 수용한 것을 보여 준다.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은 1923년 개관한 프리어 갤러리와 1987년 개관한 새클러 갤러리 두 동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프리어 갤러리는 미국 역사상 개인이 국가에 기증한 첫 미술 컬렉션이다. 찰스 랭 프리어(1854∼1919)는 철도 재벌로 자수성가한 뒤 아시아 미술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9500점에 달하는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했는데, 그중 한국 문화재가 451점이다. 여기엔 삼국시대 금동불, 고려말 수월관음도 등 진귀한 유물이 있다.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는 개막 한 달 만에 누적 관람객 수 1만5000명을 넘겼다. 한 세기 전, 프리어가 구입했던 우리 문화재들이 나라 잃은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다면 오늘날 이 선대 회장의 기증품은 전혀 다른 스토리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기업인이 평생 수집한 우리 문화의 정수를 국가에 돌려주고, 그것이 다시 세계로 나아가 찬사를 받고 있다. 이 순환의 여정에는 단순히 과거의 찬란한 역사가 아니라 자국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며 세계와 나누는 성숙한 국가의 면모가 담겨 있다. 100년 전 프리어 갤러리에 흩어져 들어간 우리 문화재 옆에, 이제는 우리가 모으고 아끼고 나누고자 하는 보물들이 나란히 서 있다. 역시 세상의 중요한 일들은 언제나 세 가지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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