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유윤종]그렇게도 치밀한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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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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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부장
유윤종 문화부장
음모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들의 시선에 따르면 그렇다. 치밀한 기획과 결탁이 빚어낸 음모가 가득하다. 21일 돌연히 ‘안철수 룸살롱’이 네이버 상위 검색어에 올랐다. 그들의 시선으로 재구성해보자.

‘안철수 룸살롱’ 포털-언론 결탁?

“‘안철수 원장이 유흥주점을 갔다고 말한 증인들이 있다’고 신동아가 보도했다. 그 뒤 네이버에서 ‘안철수 룸살롱’을 치면 성인 인증을 할 필요 없이 바로 결과가 검색된다. 반면에 ‘박근혜 룸살롱’을 치면 예전처럼 성인 인증을 요구한다. 이거 봐라. 안철수 원장의 룸살롱 출입설을 가능한 한 널리 퍼뜨리려는 속셈 아니냐. 언론과 포털이 결탁해서 의혹을 확대하려는 거다.”

이런 ‘결탁설’을 처음 제기한 장본인은 ‘나는 꼼수다(나꼼수)’ 패널인 주진우 시사IN 기자다. 그가 트위터에서 한 말이 퍼지면서 그동안 <19禁>에 한을 품어왔던 ‘초딩(초등학생) 중딩 고딩’까지 ‘룸살롱’ 검색에 나섰다. 이윽고 유력 정치인의 이름에 온갖 민망한 금칙어를 갖다 붙인 조합들이 검색어 상위를 차지했다.

여러 해 동안 이 사회의 온갖 현상을 취재해온 ‘기자’의 머리에 떠오른 시나리오가 그 정도였나. 내 눈에는 이 같은 추측의 수준과 층위가 ‘티진요(티아라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멤버들이 제기했다는 음모설과 다르지 않다. ‘티진요’ 게시판에는 티아라 멤버 화영의 왕따설이 떠오른 데 대해 ‘저축은행 비리 은진수 전 감사위원의 가석방을 감추려는 것’이라는 음모설이 올라왔다. 한국 사회에서 은진수가 걸그룹까지 동원할 정도로 영향력과 파장이 큰 인물이었던지.

이런 음모론의 세계관에는 이른바 ‘센 자’들이 뭉쳐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언론과 유력 정치인, 재벌이 (이번 경우엔 유력 포털까지) 단물을 주고받으며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 드라마 ‘추적자’의 서 회장처럼 세상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고 이기심만 남은 (‘옆집 딸내미가 시집 가뿐 기라. 두어 달 지나니 술 먹는 버릇만 남은 기라’) 노회한 인물들이 낄낄거리며 치밀한 각본을 구성하고 임무를 나누어 맡을 것이다. 그들이 마음대로 세상을 조종하고 이권을 분배하는 것이다.

그런가? 20년 넘게 기자로 일하며 선후배들과 저녁 자리에 끼어 언론계의 온갖 무용담을 듣고 지낸 나 혼자 그 치밀하고 거대한 카르텔을 몰랐던 것일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카카오톡까지 활성화된 정보대국 대한민국에서 그 많은 비밀을 누설 없이 집행할 수 있는 치밀한 조직은 무엇일까. 툭하면 실언으로 다 얻은 점수까지 까먹곤 하는 정치인들이 그들인가? 호텔방에서 서툰 감청을 시도하다 국제 망신을 겪기도 하는 국정원인가? 언제부터 포털이 유력 언론과 단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나.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 많이들 본 것 아닌가?

산업화 이후 벌써 반세기. 치밀하게 짜여 버린 사회 구조는 세상에서 큰 역할을 해보려는 돈키호테들을 예전보다 훨씬 적게 허용하게 됐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유동성이 줄어든 세상에선 내가 바꿀 수 있는 몫이 줄었다. 기성 사회의 벽은 한껏 견고하고, 뭔가 ‘내가 모르는’ 담합으로 세상이 짜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찍이 김어준 ‘총수’의 딴지일보가 애용했던 수사학 그대로 ‘아니면 말고’ 한마디면 그만이다.

‘아니면 말고’식 의혹 얼마나 판칠지

이제 넉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제기될 의혹들은 대선일 전에 충분히 검증할 시간도 없다. 이른바 유력 주자는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다. ‘아니면 말고’가 쌓여 왁자지껄한 가운데 제법 많은 사람이 이 같은 ‘결탁의 음모론’에 영향을 받아 투표하게 될 것이다. 잠깐, 혼동된다. 과연 ‘기획’은 어느 쪽이 하고 있는 건가? 의심을 갖는다면 그것 역시 허술한 음모론인가?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음모론#안철수#결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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