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안보윤]온 국민이 흥분할때 박태환은 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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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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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 소설가
안보윤 소설가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아주 오래전 경기 스타트 신호가 총성일 때가 있었다. 총성은 무례할 정도로 거침없이 스타트대에 선 선수의 등을 후려쳤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전자음은 극적인 효과보다 부드럽고 세련된 유도(誘導)에 의미를 두는 듯하다. 적당한 긴장감으로 시작된 경기는 점차 달아올라 후반부 최고조의 흥분을 선사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경기를 관전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볼 때다. 선수들이 경기 때마다 듣는 건 명백한 총성이다.

스타트대에 선 선수가 견뎌야 하는 것은 기대에 대한 부담감과 기록 수립에 대한 중압감뿐만이 아니다. 선수들은 더욱 확실한 무게를 가지고 어깨를 짓누르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의 자신’과의 싸움이다. 세계신기록을 냈던 선수라면 영광에 도취되었던 순간의 오만함과 싸워야 한다. 실격이나 탈락의 아픔을 가진 선수라면 자기 비하와 자책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수의 경기 경험을 가진 선수일수록, 굴곡이 심한 선수일수록 과거의 자신은 더욱 거대해진다.

그렇게 따지자면 박태환이 짊어진 박태환은 최강급이다. 마린보이와 로마 쇼크, 신기록 수립과 예선 탈락. 한 사람에게 붙기에 지나치게 무겁고 모순적인 수식어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런던 올림픽 자유형 400m 경기는 어땠는가. 박태환은 결승 진출과 실격의 기로에 서 있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쪼개 가며 훈련해 온 시간이 물거품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막연히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선수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로마 세계선수권의 좌절과 베이징 올림픽의 환희를 넘나들고, 끝내는 아테네 올림픽의 기억까지 끄집어냈을 것이다. 런던에 도착해 세계신기록을 꿈꾸던 선수의 각오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바뀌고,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됐다는 절망에 다다랐다가 혹시 모른다는 희망에 매달리기까지. 4시간 동안 계속되었을 참혹한 변주가 새삼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박태환’을 이겨 냈다.

런던 올림픽 400m 자유형 결선 스타트대에 선 박태환은 의연했다. 그 역시 총성을 들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시작되므로, 결선 총성과 함께 박태환은 있는 힘껏 과거의 자신을 떨쳐 냈을 것이다. 물속으로 뛰어든 것은 새롭게 태어난 박태환이다. 보기 좋으라고 만들어 낸 근육이 아니라 물의 압력과 저항이 오랜 기간 조각해 낸 그의 전신근육, 단단하게 근육이 선 종아리와 발가락 끝까지 꽉 찬 긴장감이 그 증거다. 정확한 동작으로 물을 긁고 킥을 하기 직전,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긴박한 순간이 존재했다. 총성 직후 0.6초 동안 벌어진 일이다. 박태환의 은메달, 2연속 메달 획득이 더 값진 것은 이런 까닭이다.

박태환은 은메달에 대해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썩 좋은 핑계가 있음에도 언급하지 않는다. 박태환을 벗어던진 박태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태환이 믿음직한 ‘좋은 선수’라는 사실을, 국가대표에 걸맞은 실력과 품격을 갖춘 선수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박태환 선수가 스타트대에 서 있다. 그의 혼란과 도전과 쾌거를 줄곧 지켜봐 왔던 만큼 그의 스타트가 유독 아름답다.

안보윤 소설가
#박태환#수영#은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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