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홍석민]“호떡장수라도 할까?”

  • Array
  • 입력 2012년 7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홍석민 산업부 차장
홍석민 산업부 차장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봄 동아일보 경제섹션 한구석에 짧은 기사가 실렸다. ‘호떡장수도 철학 있다―40대 프로의 장인정신’이라는 제목으로 호떡을 팔아 하루 수십만 원을 번다는 A 씨를 소개한 기사였다. 전날 필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던 A 씨는 자신의 기사를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가 이렇게 잘 나올 줄 몰랐다. 정말, 정말 고맙다…”라며 연신 감사의 뜻을 전했다.

10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이라 기사를 쓰게 된 경위는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원고지 석 장 정도의 단신에 왜 이렇게 고마워하는지 불편했던 느낌은 생생하다. 혹시 필자의 기사가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풀렸다는 뜻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그래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으니 꼭 한 번 찾아 달라”는 간곡한 요청에 무성의하게 “네”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연락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그해 12월 30일 A 씨는 동아일보를 찾았다. 호떡집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과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500만 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냈다.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써 달라며…. 그 순박한 웃음을 보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무슨 의심을 했던 것인가.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대학 창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호떡장수 이야기가 나왔다. 사회자가 “창업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호떡장수라도 할 거냐’고 묻는다. 이 가운데 호떡장수 경험이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자 이 대통령이 손을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한국 사회에선 호떡장수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창업 아이템으로 꼽힌다는 뜻으로 읽힌다.

보도를 보면서 문득 A 씨가 떠올랐다. 그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A 씨의 이름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 한 기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A 씨가 몇 해 전 갑작스레 세상을 하직했다는 사실이 들어 있었다.

침울한 기분으로 몇 가지 기사를 더 찾아 읽었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의 드라마 같은 삶이었다. 호떡장수 전에도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시작했다. 아무나 할 것 같은 호떡장수도 초반엔 힘겨웠다. 아무리 호떡을 반죽해도 제대로 맛을 낼 수가 없어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호떡 사업이 번창해 회장 소리까지 들었다지만 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남을 도우며 살았다.

후회가 밀려왔다. 필자는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진전된 기사를 독자들에게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끄러운 건 기자임에도 호떡장수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의 취재원이 보자고 했어도 쉽게 무시했을까.

불황이 이어지며 생계형 창업에 내몰리는 가장이 늘고 있다. ‘호떡장수라도 할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A 씨의 성공 비결을 참고 삼아 들려주고 싶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엔 고객을 다시 찾게 만드는 꾸준한 연구 노력,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는 철저한 장인정신, 번 돈을 좋은 일에 쓰는 마음가짐 등이 소개됐다.

호떡장수가 되는 건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하루하루 실패를 딛고 일어서고, 남보다 더 잘하게 되는 건 어렵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성공한 뒤에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떡장수 A 씨는 필자가 지금껏 만났던 그 누구보다 훌륭한 기업인이었다.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
#외환위기#호떡장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