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지문]서울대 폐지안,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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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아침 신문에서 ‘민주통합당 대선공약, 서울대 폐지안’ 문구를 보며 “왜 철 지난 헛소리를 또 꺼내지?” 하는 생각과 함께 용어의 폭력성에 소름이 끼쳤다. 서울대는 국가 중추기관 중의 하나인데 ‘폐지’ 같은 끔찍한 말을 함부로 쓰다니…. 획기적인 교육혁신안이라는 인상을 주고 서울대에 대한 일부 국민의 악감 내지 유감을 자극해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에서 사용한 것이겠지만 그 무지막지한 어휘가 그 말을 쓴 집단을 조폭처럼 보이게 한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막중한 국가자산, 국민적 염원과 기대와 정성을 양분으로 이제 당당히 도쿄대 베이징대를 제치고 아시아대학 평가 4위, 세계랭킹 42위에 진입한 국립대학을 없앨 것을 제안하는 집단이 ‘공당(公黨)’인가?

사실 옛 한나라당에서도 제안한 바 있는 서울대 폐지 내지 개혁안은 얼핏 보기에 그럴듯하고 목표가 고매해 보인다. 그러나 실천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효과보다 폐단이 훨씬 큰 구상들이다. 전국 국공립대를 하나로 묶겠다고 하는데 그럴 경우 다수의 과목에 전국의 국립대학생이 몰려들어 수습할 수 없는 혼란이 일고 행정은 마비되고 교수들의 연구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서울대에는 기초학문 학과만 남기고 일반 학부는 다른 캠퍼스에 분산시키겠다는 것도 학문 통섭의 시대에 완전히 역행하는 발상이다.

‘서울대 폐지’라는 통 큰(?) 구상을 한 사람은 교육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인 듯하다. 미국 내 가장 큰 주립대학망으로 주 안에 23개 대학을 포괄하는 캘리포니아주립대(UC) 시스템만 해도 민주당이 생각하는 것 같은 통합적인 제도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각 대학이 학생 선발, 교육, 교원 선발 등을 자율로 하면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UC가 시행하고 있는 대학 간 학점 인정 제도는 서울대도 타 국립대, 사립대와 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립대들도 이미 상호협정으로 시행하고 있다.) 민주당이 모델로 제시한 프랑스의 ‘파리대학’ 통합이 몰고 온 교육의 질 저하, 학문 수준의 저하는 이미 여러 분들이 지적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서울대에 대한 악감을 자극해서 ‘표’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당이 있을 정도로 국민의 서울대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다. 서울대를 향한 일부 국민의 악감이 전적으로 질투심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 졸업생의 엘리트 의식이나 인맥의 영향력 같은 것 역시 서울대 구성원들의 계획적 산물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사회 여건과 국민 의식이 허용하고 조장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서울대의 풍토, 의식 변화를 유도하려면 우리 사회 여건을 변화시키고 국민적인 요구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서울대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실대학을 과감히 정리하고 키울 대학은 확실히 뒷받침해서 고등교육 수준이 동반 상승할 수 있게 정치권과 교육계, 국민이 뜻과 힘을 모으는 것이다.

서울대는 이미 ‘법인화’와 함께 외부사회 여론과 압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주당이 구상, 요구하는 학생 선발 다양화 등 많은 사항이 서울대가 법인화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서울대를 흔들어 쓰러뜨리려 하지 말고 법인화가 성공할 수 있도록, 그래서 서울대가 국가경쟁력을 선도하고 타 대학의 발전을 자극할 수 있도록 국민적 지원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큰 나무에 병충해가 문제라면 방제를 해야지 나무를 마구 찍어 뽑아버리면 홍수에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시론#서지문#서울대 폐지#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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