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전국 병의원에서 확대 실시되는 포괄수가제에 반발해 안과의사회가 백내장 수술 거부를 선언했고 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개원의사회도 수술 거부를 논의하고 있다. 포괄수가제가 확대 적용되는 수술은 백내장 편도 탈장 치질 제왕절개 자궁수술 등이다. 2000년 의약분업에 따른 3차례의 의료계 휴·폐업으로 고통을 겪었던 국민은 그때 같은 의료대란이 재연되는 게 아닌지 불안해한다. 병원협회가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아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당장 생명엔 지장이 없어도 수술 날짜만 기다리며 불편을 견뎌내고 있는 환자들은 진료 사각지대로 내몰릴 판이다.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예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포괄수가제는 같은 질환의 환자는 어느 병원에서나 같은 진료비를 내는 ‘진료비 정찰제’라고 할 수 있다. 진료 행위에 따라 제각각 진료비를 매기는 행위별 수가제와 대비된다. 행위별 수가제에선 병원 측이 환자에게 진료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과잉 진료와 비급여 진료가 많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포괄수가제는 그로 인한 의료비 거품을 줄여 환자와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을 덜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포괄수가제는 현재 약 70%를 넘는 병의원이 자율 시행하고 있다.
의사협회와 개원의사회는 “포괄수가제는 정해진 액수에 맞춰 진료해야 하기 때문에 ‘과소 진료’를 유발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응급환자와 중환자의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일부 병원이 고가의 영상장비 진료를 통해 벌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행 진료수가는 대부분 의사단체가 직접 작성한 의사 업무량과 진료비용을 고려해 산정한 것이다.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을 앞두고 진료수가도 평균 2.7% 인상됐다.
급증하는 의료비로 몸살을 앓는 미국과 유럽 다수 국가가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이 국가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의료비가 늘어나고 있어 이 제도의 확대가 불가피하다. 일단 제도를 시행하면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손질하는 게 바람직하다. 의사의 수술 거부는 가장 기본적인 직업윤리를 저버리는 행위다.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는 의료법 15조에도 위배된다. 환자를 볼모로 삼는 집단이기주의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