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상근]총리가 다문화행사 자리 지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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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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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스무 살 연상의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농사를 짓는다. 뇌중풍(뇌졸중)을 앓는 시아버지를 돌본다. 간식을 챙기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킨다. 4년째. 시어머니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자기 방에 먼저 가지 않는다.(베트남 출신)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시아버지가 중국산 운운하며 창피를 줬다. 시어머니는 자주 꾸짖었다. 식당을 운영하고 신문을 배달하며 생계를 꾸렸다. 출산하는 날에도 음식을 배달했다. 시동생은 형수라고 부르지 않았다.(중국 출신)

다문화 여성의 삶은 고달팠다. 아니 고달프다.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의 지원서는 땀과 눈물의 기록이다. 한두 명이 과거에 겪은 특이한 사연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주여성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수상자 가운데 이소은 씨가 있다. 기자는 악수하다가 놀랐다. 25세 여성의 손이 아니었다. 거친 장갑, 두꺼운 가죽을 만지는 듯했다. 그는 1일 시상식장에서 눈물을 펑펑 쏟는 바람에 소감을 이어가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한국 농촌에서 살기까지 순탄하지 않았던 삶. 이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은 수상자와 가족을 한 명 한 명 끌어안았다. 그는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바로 내 이야기”라며 “그래서 수상자들이 나올 때마다 내가 상을 받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한국에 도착한 직후에는 사소한 관습의 차이로 당황하거나 불편했다고 입을 모았다. 자기 나라에서처럼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가족과 뽀뽀를 하거나 체취를 맡다가 어색해졌다는 식이다. 한국생활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면 동남아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슈퍼마켓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한국 사람부터 계산해주는 주인장 앞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수상자들은 이런 경험을 살려 같은 처지의 다문화 여성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선배니까 어려웠던 점, 적응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점에 대해 잘 알려줄 자신이 있다. 한국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을 정리해서 알려주고 싶다.”(왓사나 코클링·태국 출신), “솔직히 말하면 내게 거창한 목표는 사치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차다. 생계가 어렵다. 그래도 다문화가정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돕고 싶다.”(윤지현·베트남 출신)

피부가 다른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전해졌을까. 김황식 국무총리는 행사의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원래는 축사와 기념촬영을 마치고 중간에 떠날 계획이었다.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진영 정책위 의장, 민주통합당의 김영환 의원, 송석구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단체상을 받은 김관용 경북지사는 “고위 공직자와 유명 정치인은 축사나 시상 등 정해진 역할이 끝나면 일찍 자리를 뜬다. 이번처럼 모두가 끝까지 남은 모습은 처음 봤다”고 얘기했다.

행사를 준비하며 정부 부처, 정치권, 시민단체, 대학, 기업의 관계자들과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도 이해와 배려가 중요함을 다시 알게 됐다. 여러 곳의 희망사항을 반영해 최대공약수를 찾고, 분 단위로 일정을 만들고, 공문으로 전하는 과정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장점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

다르거나 낯선 이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 대한민국이 건강한 다문화사회로 가는 데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획부터 공고와 심사를 거쳐 시상까지 묵묵하게 도와준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songmoon@donga.com
#다문화#동아 다문화상#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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