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두발 복장 등 용모, 교육 목적상 필요한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의 사용 및 학교 내 교육·연구활동 보호와 질서 유지에 관한 사항 등 학생의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을 학칙으로 규정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시행령 개정에 따라 인권조례의 효력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와 인권조례를 제정한 시도 교육감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교과부는 개정된 시행령에 위반되는 인권조례 부분은 효력이 없고 학교가 학칙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해당 시도 교육감들은 인권조례는 여전히 유효하며, 학칙은 상위법인 조례의 내용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다.
법리적인 문제를 논하기 전에 인권조례를 제정한 의도와 결과를 합목적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을 인격자로 대우하고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대한민국의 최고 가치규범인 헌법과 하위 법률도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인권은 인권조례 제정 전에도 보장돼 있었다. 다만, 인권이 교육현장에서 침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조례는 법령상의 인권을 강화하고 실효성을 보장하려는 좋은 의도에서 제정된 것으로 보고 싶다.
하지만 인권조례 도입 이후 학교 현장의 교육은 상당히 표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사와 학생 간의 사제동행(師弟同行)이 멀어지고, 교사가 학생에 의해 고발당하고, 교사들이 학생지도 방법을 찾지 못해 무력감을 느끼며, 학교가 두려워지는 학교 붕괴의 파열음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인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지만 그것이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이념화되고 정치도구로 전락하는 경우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리적인 측면에서 형식 논리적으로 보면 교육 사무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이고, 지자체의 조례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교육시설인 학칙에 우선하므로 학칙은 인권조례를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학교는 헌법 제31조 제4항에 의해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는 학교자치의 주체가 된다. 교육의 자주성은 학교가 감독청의 관료적이고 획일적인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교사와 학교 구성원에게 다양한 교육 형성의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의 전문성은 교육전문가에게 현장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과 교과 운영, 학생 지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민주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재 육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학교자치를 헌법 차원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권조례의 상위법이 되는 교육기본법도 제5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여야 하며,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해 실시하여야 한다. 학교 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며, 교직원 학생 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 광주의 인권조례는 모든 학교에 대해 인권에 관한 획일적인 입장을 강요하고 있으므로 학교자치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배치된다고 볼 수 있다.
학생인권 문제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례로 정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기본적인 방향을 선언하고 권장하는 인권선언 정도가 오히려 적합할 수 있다. 특정 세력의 인권교육관을 조례를 통해 모든 학교에 획일적으로 강요하려다 보니 법리적으로 위법한 결과를 초래하고, 현실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 것 아닌가 한다. 학교를 지상천국으로 만들려는 순진한 생각이 학교를 지상지옥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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