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실과 범죄 덩어리 저축은행, ‘은행’ 이름 빼라

  • 동아일보

1972년 지역의 서민금융회사로 출범한 상호신용금고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예금보호한도가 1인당 2000만 원에서 은행과 같은 5000만 원으로 확대됐고 2002년에는 상호저축은행으로 이름이 격상됐다. 국회에서 몇몇 의원이 “시중은행으로 오인할 소지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정부는 보완책도 없이 밀어붙였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카드사태로 부실이 깊어진 저축은행에 2005년 인수합병을 허용했고 2006년에는 우량 저축은행에 대출 규제를 없애줬다. 솔로몬 한국 등 덩치가 커진 저축은행들은 경쟁적으로 고위험 고수익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나섰다. 2008년 이후 부동산 시장이 급랭해 저축은행들의 부실이 급속도로 불어났지만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을 핑계로 구조조정을 미뤘다. 지난해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를 유예해 경영주 및 대주주의 불법과 비리를 키운 꼴이 됐다.

10여 년간 3개 정권의 정책이 저축은행 부실과 경영진의 일탈을 키우는 쪽으로 갔다.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의 자격 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부실 저축은행과 감독당국 사이의 뒷거래도 활발했다. 감독당국은 저축은행 감사나 사외이사 자리에 퇴직 간부들을 낙하산으로 보냈으며 부실과 비리를 눈감아주고 뇌물과 향응을 받았다.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은 고객이 맡긴 돈을 제 주머닛돈처럼 꺼내 썼다. 그런 게 무슨 은행인가. 고객 돈을 빼돌려 밀항하려다 붙잡힌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다른 사람 명의로 대출을 받아 골프장 겸 리조트를 사두는 수법을 썼다. 검찰은 수천억 원에 이를 저축은행 경영진의 범죄 행각을 낱낱이 밝혀내 세금을 헛되이 쓰지 말아야 한다.

20개 저축은행을 퇴출시키는 등 급한 불은 껐으므로 저축은행이 서민금융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도록 관련 제도를 일제 정비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퇴임 전에 집중해야 할 과제다. 은행처럼 인식돼 결국 큰 사고를 친 저축은행의 간판에서 ‘은행’이라는 이름을 빼야 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명칭 환원을) 장기적으로 검토할지 말지 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명칭, 영업 범위, 임원 자격 등에 대한 대수술을 당장 검토하기 바란다.
#사설#저축은행#저축은행 비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