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은애]커피 원산지 표시,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 Array
  • 입력 2012년 4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황은애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원
황은애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원
최근 관세청은 원두의 생산국을 커피의 원산지로 표시하지 않아 원산지표시 규정을 위반한 수입업체들에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통보한 행정조치(작년 9월 28일자)를 취소했다. 또 지식경제부는 원두의 생산국을 커피의 원산지로 표시하도록 했던 기존 방침을 바꿔 5월부터는 원두의 가공국을 원산지로 표시하도록 판정 기준을 변경했다. 글로벌 경제와 자유무역 체제가 본격화함에 따라 상품 선택을 위한 소비자 정보로서 원산지 표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관련 부처들의 이번 조치는 소비자의 알권리를 현저히 저해하는 동시에 커피의 원산지 표시가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되짚어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커피의 원산지 판정은 ‘실질적 변형기준’(대외무역법 제34조)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해당 물품이 2개국 이상에서 생산, 가공, 제조된 경우 그 물품의 본질적인 특성을 부여한 활동을 한 국가를 원산지로 표시토록 하는 기준이다. 지경부가 커피의 원산지를 가공국으로 변경한 것은 볶음(로스팅) 등의 가공공정을 통해 실질적 변형이 발생하고 원료혼합(블렌딩)과 같은 가공기술이 커피의 품질을 결정한다는 커피업계의 주장을 반영한 결과다.

커피의 원산지는 품질과 가격, 기호 등 소비자가 제품 선택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이기에 원두 가공국을 원산지로 표시할 경우 소비자 선택권 차원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커피의 원재료인 원두는 100% 수입되며 원두커피를 만드는 데 투입되는 유일한 재료이다. 원두는 농산물이므로 생산국은 등급, 품종 등과 함께 커피의 품질과 특성을 좌우하는 근원적인 요소다. 볶음과 혼합 등의 가공은 원두가 지니고 있는 맛과 향을 극대화하는 제품화를 위한 활동일 뿐 커피 본연의 특성을 부여하는 과정으로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원산지는 커피 가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정보다. 원두의 생산국에 따라 수입가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여러 국가의 원두가 혼합된 제품의 경우 원산지를 원두의 생산국들이 아닌 하나의 가공국으로 표시하게 되면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내 커피 수입량의 급증과 커피 소비의 고급화, 다양화 추세에 따라 소비자가 요구하는 정보는 기존 커피 브랜드나 유통기한 등에서 원두의 생산지, 혼합원료 사용 유무, 제조일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가공국을 커피 원산지로 표시하면 소비자는 원두의 생산국뿐 아니라 해당 제품이 혼합원료를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으며 국내에서 가공한 커피의 원산지는 ‘국내산’으로 표시돼 원산지 인식에서 소비자가 오인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원산지표시제도가 공정한 거래질서의 확립뿐 아니라 소비자 보호라는 중요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커피의 원산지 표시는 제도 운영과 업계의 입장 등을 고려해 이번 결정대로 시행한다고 해도 ‘원두 생산국’의 병행표시 등의 제도 개선을 통해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황은애 한국소비자원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원
#커피#원산지표시제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