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종석]강동희 그리고 ‘승리의 철사’

  • 동아일보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동부그룹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1962년 3월 설립된 한국자동차보험공영사가 그 뿌리다. 모기업의 뜻깊은 탄생 반세기를 맞아 프로농구 동부는 시즌 전에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50승 프로젝트였다. 정규시즌 54경기 중 43승으로 1위에 오른 뒤 4강 플레이오프 3승, 챔피언결정전 4승을 합해 50승을 채워 통합챔피언에 오르자는 것이었다. 동부는 4일 끝난 정규시즌을 역대 최고인 44승(10패)으로 마감하며 좁게만 보였던 1차 관문을 통과했다.

동부의 우승은 보통 우승이 아니었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후 처음으로 1∼6라운드에 줄곧 순위표 꼭대기를 지켰다.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 우승. 이 말은 1700년대 영국 경마장에서 유래했다. 당시에는 출발과 도착 지점을 철사(wire)로 구분했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1위를 유지한 경우를 뜻한다.

5개월 가까운 프로농구 정규시즌에서 선두 독주는 쉽지 않다. 선수들은 장기간 1등에 따른 피로감에 젖어 방심하기 쉽고 ‘공공의 적’으로 취급되면 다른 구단의 견제도 심해진다. 판정 불이익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때도 있다.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인 골프는 시종일관 선두를 지켜내기가 더욱 어렵다. 5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혼다클래식 우승과 함께 세계 랭킹 1위에 등극한 로리 매킬로이는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사흘 연속 선두였지만 마지막 날 80타로 자멸해 공동 15위까지 추락했다. 매킬로이는 바로 다음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와이어 투 와이어로 트로피를 안은 뒤 “실패가 쓴 약이 됐다”는 소감을 밝혔다. PGA투어에서 71차례나 우승한 타이거 우즈도 강한 카리스마와 집중력으로 유명했지만 1∼3라운드를 단독 선두로 마친 뒤 정상에 골인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은 7차례에 불과하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목표관리법(MBO)에서 스마트 원칙을 강조했다. 구체적이고 측정과 달성이 가능하며 결과 지향적이고 시간 제약이 있는 목표를 세워야 조직의 성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경영학 문외한인 동부 강동희 감독은 이런 고전적인 원칙을 잘 알고 있었을까. 강 감독은 그저 오를 봉우리만 던져둔 건 아니었다. 16연승, 44승, 8할 승률 등 그동안 누구도 이룬 적이 없던 신기원을 향해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리더가 소통을 강조하고 주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팀원들의 책임감이 높아졌다.” 동부 간판스타 김주성의 분석을 들어보면 어느 1등 기업의 구성원 같다.

동부의 정규시즌 원주 홈경기 관중은 102.6%의 객석 점유율로 역대 최고인 8만4542명에 이르렀다. 코트 지배와 신기록 양산이 흥행카드였던 셈이다. 강 감독은 정규시즌 마지막 54번째 경기를 마친 뒤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몇 달이 몇 년 같았어요. 용두사미가 될까봐. 담배도 늘고요. 이젠 또 포스트시즌 걱정이….”

어디 스포츠뿐이랴. 용을 그렸으면 누구나 눈까지 찍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학창 시절 1등을 놓치지 않던 수재가 사회에서도 꼭 엘리트가 되리란 법은 없다. 대세론을 등에 업고 청와대나 여의도를 향해 순항하던 유력 정치인도 암초를 만나 흔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고독한 슈퍼스타에게 승리의 철사를 끊는 순간은 그래서 더 황홀한지 모른다.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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