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11>양동마을 서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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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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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제공
양동마을 제공
조선집을 공부하는 분들이면 으레 겪는 일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연구자들은 종손들과 어느 정도 알고 지내게 마련이다. 워낙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종손들도 귀찮기는 하겠지만 자기 못지않게 집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려니 여겨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미리 연락을 하고 찾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연락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때 혹시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경우, 연구자들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하기 일쑤다. 분명히 인사를 했는데 상대방이 알은체도 안 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연구자는 이 상황에서 온갖 상상을 다 한다. 그 무서운 궁금증을 안고 종가에 가면 의문은 그때에야 풀린다. 아까 그냥 지나친 종손이 의관을 갖춰 입고 마중을 나오는 것이다. 의관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양은 개인을 사회의 최소 단위로 본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의 유가에서는 사회의 최소 단위를 가족으로 잡는다. 그래서 가문이라는 것은 나보다 먼저 존중되어야 하는 구성원 공통의 가치다. 조선은 국법과 함께 종법이 따로 존재했던 시대다. 그 시대에 종가라는 것은 대단한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징성은 종손의 위치에서 보자면 참으로 버거운 짐이었다. 가문의 모든 대소사를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 회합을 준비해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종손은 개인적인 꿈을 이루는 노력조차 해서는 안 된다. 종손은 종가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양동마을의 서백당(書百堂)은 그런 집이다.

서백당은 월성 손씨의 종가다. 당호만 봐도 한숨이 나온다. 참을 인(忍)자를 100번을 쓰라는 의미다. 그러나 나는 서백당에 가면 편안하다. 행랑채가 어떻고, 안채가 어떻고 하는 건축적인 분석을 통해 이유를 찾아야 하겠지만, 서백당에 가면 그런 게 다 부질없이 느껴진다. 거기에서는 모든 숨결들이 낮게, 낮게 깔려 있다. 허리를 낮출 것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만드는 기품이 배어 있다. 한 인간의 희생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것일까? 반가로는 드물게 삼량집이고, 현존하는 반가로서는 온양의 맹씨행단 다음으로 오래된 집이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하지 않은 집. 서백당은 그런 집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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