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종훈]사르코지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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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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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파리 특파원
이종훈 파리 특파원
5년의 대통령 임기를 거의 채워가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잘한 게 적지 않은데도 욕을 먹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경제개혁 정책을 발표했다.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세 부담을 줄여주고 그 대신에 줄어든 국가 재정수입을 메우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19.6%에서 21.2%로 올리겠다고 말했다. 주 35시간의 짧은 근무시간도 노사 자율협약에 맡겨 늘리겠다고 했다. 놀기 좋아하는 국민은 난리가 났다. 게다가 기업을 위해 세금까지 더 내라니. 여당에선 4월 대선에 6월 총선까지 모조리 망치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국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포퓰리즘 공약들만 내세워도 될까 말까 한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이 싫어하는 일만 골라 하고 있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사르코지의 재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사실 그의 운명은 2009년 가을 연금개혁을 밀어붙였을 때부터 예정된 건지도 모른다. 많은 참모들이 재선 후 추진하자고 한 사안이었다. 당시 “훗날 프랑스는 아무도 안 하려 했던 일을 한 사르코지에게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한 전문가도 있었지만 그의 지지도는 추락했다.

입만 열면 독일 타령이라는 비아냥까지 듣지만 사르코지의 목표는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밑천이 다 드러난 프랑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근로시간은 유럽에서 가장 적고, 연금은 가장 먼저 받으면서도 거대한 국가부채로 골머리를 앓는 등 ‘유럽의 새로운 병자’라는 비아냥까지 듣게 된 프랑스다. 프랑스의 노동생산성은 2000년 이후 한 번도 독일이나 미국을 앞서보기는커녕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보다도 높았던 적이 없다.

조상 잘 만나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려온 프랑스가 그렇게 자랑하는 공공부문이 얼마나 허울만 그럴듯한지는 파리경찰청만 가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외국인에게 체류증을 만들어주는 공무원이 하루에 상대하는 민원인이 달랑 10명에 불과하다. 한국 같으면 건당 절대 10분을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8월 딸이 입원했던 파리 서부의 최대 어린이병원은 환자가 한 명도 없는 텅 빈 병실이 병동마다 부지기수였다. 사르코지 정권은 의사, 간호사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 병원을 3분의 1로 축소하기로 했다. 이 나라의 국영 항공사는 국내선의 경우 아무 설명도 없이 마음대로 비행편을 취소하는 일이 다반사다.

사르코지가 이런 프랑스병을 고치겠다며 임기 말까지 욕먹기를 자처하자 “재선은 포기하고 역사의 순교자로 남으려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재미있는 건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사르코지의 덕을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홀로 우뚝 선 독일의 경제 부활 신화는 전임 좌파 정권의 경제개혁이 낳은 열매라는 게 중론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이 2000년대에 들어서도 통일 후유증으로 저성장과 고실업률, 재정적자에 시달리자 노사 자율협의로 근로시간을 늘리고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등 대대적인 노동 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총선에서 패배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취임 후 첫 의회연설에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연 슈뢰더 총리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누가 알겠나. 올랑드 당선자도 “전무후무한 경제위기를 두 번이나 이겨내고 새 시대의 문을 연 사르코지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말하게 될지.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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