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가습기의 첫 발명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랠프 패터슨이란 미국의 발명가가 1920년에 전기 히터로 물을 증발시키는 가습기를 발명해서 특허를 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 전기가 사용된 19세기 말엽 이후에는 비슷한 발명이 줄을 이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발명자를 알 수 있는 것은 초음파 가습기이다. 초음파 가습기는 전기 진동을 이용해 물 속의 금속판을 초고속으로 진동시킬 때 물의 표면에서 미세한 물방울이 만들어져서 공기로 방출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초음파 가습기는 오랫동안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을 완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던 미국의 드빌비스사가 1964년에 발명해서 특허를 출원했다.
호흡기 환자들을 위해 발명된 초음파 가습기는 곧바로 가정과 사무실에도 널리 보급되었다. 물을 데우는 가습기와 달리 초음파 가습기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뜨거운 물을 엎지를 염려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히터형 가습기에 비해 전력 소모가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가습기에는 받아 놓은 물에서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 번식하기 용이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물을 끓이는 가습기와 달리 초음파 가습기는 이런 미생물을 미세한 물방울에 담아서 공기로 발산시켜 호흡기를 통해 흡입하게 했다.
방향제-과일세정제도 안심못해
가습기에 정수한 물을 사용하고, 물통과 초음파 발생 부위를 자주 깨끗하게 세척해 주는 것이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인데, 이는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가습기의 복잡한 내부 구조 때문에 실제로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3%로 희석한 과산화수소수를 사서 가습기 통을 닦아주면 살균이 되는데, 세척 후에 과산화수소수를 모두 다시 닦아내야 하는 등 이 방법 역시 번거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 보건부의 지침에는 병원에서 분무식 가습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이러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기술적 해법’으로 등장했다. 1994년 당시 한 주식회사의 바이오텍 사업팀은 18억 원을 투자해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는데, 이 살균제를 콜레라균 포도상구균 물때균에 시험한 결과 99∼100%의 살균력을 나타냈다고 보고했다. 2000∼3000원 하는 저렴한 가격의 살균제를 한 통 사면 겨울 내내 가습기 청소 걱정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언론에서는 ‘가습기 전용 살균제를 사용하는 것도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하면서 그 사용을 사실상 부추겼다.
올해 5월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종 폐질환으로 첫 사망자가 집계된 뒤에 비슷한 질환을 앓고 있거나 이로 인해서 사망한 경우가 계속 보도됐다. 한 추정으로는 사망자가 18명에 이르렀다. 8월에 질병관리본부가 그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에 있다고 추정 발표했는데, 당시 과학계 일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별 탈 없이 전국적으로 10년이 넘게 사용된 제품이고, 질환이 한 병원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으며,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추정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 발표가 섣부른 ‘괴담’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렇지만 11월 초에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동일 살균제가 폐의 섬유화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어 보건당국은 살균제제를 공산품에서 의약외품으로 변경해서 지정했다.
가습기 살균제에 들어가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포스페이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린,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디움 같은 화학물질은 살균력이 탁월하다. 구아니딘 포스페이트는 국제 표준으로도 삼키거나 흡입할 때나 피부에 접촉했을 때 유해한 물질로 분류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화학물질이 어떤 농도로 사용되며, 여기에 얼마나 오랜 기간 어떤 방식으로 노출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상이하게 나타난다는 불확실성이 있다. 게다가 이런 화학물질은 수천, 수만 종이 있고, 이 가운데 다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관리 대상이 아닌 공산품으로 분류돼 있다. 유럽연합(EU)과 같은 곳에서 유해하다고 추정되어 사용이 금지돼 있는 화학물질도 국내에서는 제품화되어 팔리고 있는 것들이 있다.
시민들도 화학물질 의존 줄여야
이번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된 진실은 결국 법정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가 미래를 위한 교훈을 찾자면 다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부의 관련 부서는 시민들이 가정이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방향제나 과일세정제도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제품이다. 두 번째는 시민 스스로가 화학물질에 의존하는 것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합성색소, 합성향료, 합성감미료 등이 들어 있는 식품을 적게 사용하고, 세제와 비누 등도 가급적 천연 성분이 많은 것을 써야 한다. 우리는 모든 화학물질의 안정성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며, 미래에도 그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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