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이것만은…/김문정]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테마여행’ 떠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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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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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 무대 그리스 등 뮤지컬 배경 도시 가봤으면
맛집 테마여행도 함께하며 바빠 못했던 얘기 나눠야지…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원고 청탁을 받고 “맘마미아(어머나)!”를 외쳤다. 며칠 전 동료와 재미 삼아 버킷리스트를 10가지씩 적기로 한 기억이 나서다.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적어보고 잠시 행복해했다. 흔쾌히 승낙을 했지만 그때의 기억들을 되살리고 고민에 빠졌다.

‘다이어트하기’, ‘좋아하는 사람 12명 모아 담양 대통찜 먹기’(12인분 기준이라 못 먹었던 아쉬운 일이 있었다), ‘제주 올레길 걷기’ 같은 비교적 쉬운 일부터 ‘유럽여행 가기’, ‘라디오 DJ 되어보기’, ‘수필집 내기’, ‘전원주택 짓기’ 그리고 ‘4대 뮤지컬에 버금가는 작품 남기기’까지…. 막상 글을 쓰려니 그 리스트 중 무엇을 최종적으로 선택할까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며칠 생각하다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을까?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을까?”

결국 나의 버킷리스트는 인생에서 꼭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하는 일을 다시 정해 채워보리라 다짐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할 때는 참는 것, 해야 하는 일(하기 싫은 일)은 열심히,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에 인생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2011년은 뮤지컬 음악인으로 활동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덤빈 일이었지만 음악 이외의 자질도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은 사람과 협업을 하면서 인내와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일하는 딸의 뒤치다꺼리를 맡았던 부모님은 많이 늙으셨고 아이들은 훌쩍 커버려 이젠 엄마보다 친구들과 속을 터놓는 사춘기 소녀들이 돼 버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내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 특히 ‘테마가 있는 여행’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했던 공연에 나온 도시 찾아가기. ‘맘마미아’의 그리스, ‘맨 오브 라만차’의 스페인, ‘에비타’의 아르헨티나 그리고 ‘영웅’의 하얼빈 역사…. 막연하게 느껴지는 이국적인 도시들이 실은 그간 내 작품을 통해 친근하게 알려졌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테마여행도 하고 싶다. 좋은 음식 앞에선 좋은 얘기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에게 숨겼던 남자친구 얘기, 친구들 사이에서 속상했던 얘기, 아이들의 우상인 ‘샤이니’ 얘기도 기분 좋게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언제 주어질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자신의 가정을 갖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바쁜 엄마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던 것, 그래도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해주고 싶다. 맛난 음식을 같이 먹을 때 더 좋은 것을 그들 앞으로 먼저 밀어놓으면서.

올해 교직에 몸담게 됐다. 바쁜 일정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미뤘던 숙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감당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학문으로 경험으로 쌓은 ‘내 것’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편으로 현재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늘어나는 공연 수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생각하면 새롭고 능력 있는 뮤지컬 예술인의 양성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천로역정’이 있었지만 참으로 감사하다. 믿음을 가진 나는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축복을 받은 자는 그 축복을 베풀기에 힘쓰라’는 말씀을 되뇌게 된다. 더도 말고 이 분야에서 ‘내 제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3명만 만들고 싶다. 아낌없이 준 것을 빠뜨림 없이 다 받아먹었다고 할 수 있는, 서로가 떳떳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이제 내 인생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는 질문에 분명 나는 고민했다. 음악인으로서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 엄마로서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것’ 같은 평범한 일들을 떠올렸다. 넘치진 않고 부족하지 않은 감사로 가득한 현재의 내 모습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구(詩句)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를 생각해 본다.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부지런히 일하고 오늘 할 일을 미루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도 꼭 이루어질 것이다.

김문정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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