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석민]파국 치닫는 지상파 재전송 문제 해결하려면

  • 동아일보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
제조업자 A와 유통업자 B가 있다. A가 대가를 올려 달라고 하자 B는 거부한다. A는 B에 대해 공급을 중단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사업자 간 갈등이다. 소비자 측에서 불편할 수 있다. A의 대체재, B와 대등한 유통업자가 다수 존재하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라면? 예를 들어 A는 마땅한 대체재가 없는 필수재이고 B는 대다수 국민이 애용하는 지배적 유통업자라고 치자. 이때도 A와 B 간의 다툼을 시장이나 민사법정에서 사업자들끼리 자체 해결할 문제로 제쳐둘 수 있을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소비자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소비자의 이익, 이른바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기관의 적극적 개입이 요청된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원론적 상식이다.

지상파 채널들과 케이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재전송 갈등만큼 이에 적합한 사례는 없을 것이다. A에 해당하는 것이 지상파다. 국민생활에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다.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지만 변변한 대체재가 없다. B에 해당하는 게 케이블 SO다. 대다수 국민이 의존하는 지배적 방송 시청수단이다.

이 둘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전초전인 SBS와 KT스카이라이프의 재전송 갈등에서 SBS는 HD채널 전송 중단이라는 강수를 뒀다. 서울지역 46만 가구가 2개월 반 동안 SBS HD채널을 시청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지상파와 케이블의 갈등이 초래할 파장에 비하면 사소하다. 6월 7일 가처분소송 2심 판결, 7월 20일 본안소송 2심 판결에서 법원은 지상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요지는, 케이블은 신규 디지털방송 가입자에게 지상파를 동시 재송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같은 날 지상파는 케이블 재전송 강행 시 하루 1억 원씩 받겠다는 간접강제를 신청했다. 이에 맞서 케이블 측은 지상파 재송신 전면 중단 등 실력행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상황이다. 아니 한참 전에 나섰어야 했다. 정책 공백 상태에서 소송만 난무하는 상황이다. 행정부, 사법부, 사업자 누구에게서도 시청자들의 권리에 대한 고려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파국으로 치닫는 지상파 재전송 문제의 해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정책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적극적 역할이다. 지상파 재전송 문제는 국민의 이익이 달린 문제이므로 공익적 차원에서 국가의 정책 개입은 정당하다. 재송신 대가 산정 기준, 분쟁 해결 절차 등 제도적 공백도 속히 메워야 한다. 방송사업 평가 및 그에 따른 제재, 재허가, SO에 대한 채널 편성권 회수 등 방통위가 갖고 있는 수단은 다양하고도 강력하다. 공익 수호의 주체로 사업자들에게 무시당하고 끌려다니는 무기력함은 이젠 없어야 한다.

둘째, 법원의 자중이다. 소송 만능 시대라지만 지상파 재전송 문제와 관련한 법원의 역할은 과도한 감이 있다. 방송, 특히 모든 국민이 시청하는 지상파 방송의 재전송 문제는 단순한 사적 분쟁으로 볼 수 없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갈등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는 국민이다. 사업자들 간의 저작권, 저작인접권의 법리적 검토에 앞서 국민의 시청권을 고려해야 한다. 지상파 재전송의 제도적 틀이 마련되기까지 사인들 간 다툼을 중심으로 사법적 판단이 지나치게 앞서가거나 남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셋째, 사업자들의 분별이다. 지상파와 케이블 SO는 상호 공생관계다. 각자의 단기적 이익추구를 넘어 협력을 통한 상생의 관점에서 재전송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나아가 국민의 시청권 보호 차원에서 조금은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자체적으로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경우 1차로 방통위의 정책적 개입을 존중해야 한다. 과거처럼 국가가 손을 놓고 있으면 모를까 정책당국이 지상파 재전송 문제를 적극 챙기려는 상황에서 당국의 조정 노력을 무시한 채 법원으로 뛰어가는 일은 공익을 앞세우는 방송사업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한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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