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를 마시는 걸 보고 초등학생 아들이 노래를 한다.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이 노래는 여성가족부 음반심의위원회가 16일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한 인디밴드 10cm의 ‘아메리카노’다. ‘여자친구와 싸우고서 바람 필 때/다른 여자와 입 맞추고 담배 필 때/마라톤하고 감질나게 목 축일 때/순대국 먹고 후식으로∼.’ 후렴만 들을 때는 몰랐는데 전체 가사를 보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 따라 부르기엔 부적절해 보인다.
▷음반심의위가 최근 아이돌 그룹의 일부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청소년 유해물 판정을 내린 이후로 여성가족부가 오빠부대의 전화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음반심의위는 14일 그룹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에’를 유해물로 결정했다. ‘취했나봐/그만 마셔야 할 것 같애’라는 부분이 음주를 권고한다는 이유였다. 비스트 멤버 양요섭이 트위터에 ‘앞으로 동요를 부를 생각이다. 진짜 너무하네요’라는 글을 올리자 소녀 팬들이 “오빠를 괴롭히지 말라”며 여성가족부에 항의전화를 걸고 있다. ‘아메리카노’와는 달리 ‘비가 오는 날에’의 이 한 소절이 음주를 부추긴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8년 동방신기의 노래 ‘주문-MIROTIC’의 가사 중 ‘넌 내게 빠져’ 등이 청소년 유해물로 판정되자 당시 청소년 유해물 심의를 맡고 있던 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가 팬들의 항의로 마비되다시피 했다. 동방신기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은유적으로 성행위를 표현한 것으로 느낄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청소년의 성행위를 조장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동방신기의 손을 들어줬다.
▷음심위는 매년 3만 건의 음반을 모니터링해 유해음반 여부를 결정한다. 유해음반으로 판정받은 노래는 2008년 653건에서 2010년에는 1057건으로 늘어났고 올해 상반기에만 516건에 달했다. 음심위의 모호하고 자의적인 심의기준이 장르음악을 죽이고 창작의욕을 꺾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가 주도의 심의제도가 존재하는 한 이런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은 1990년부터 미국음반회사연합(RIAA)이, 일본은 1983년부터 일본레코드협회 산하 레코드윤리심사회가 유해물을 판단한다. 음반대국의 자율심의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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