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양환]“진짜 믿음은 원수를 용서하는 것” 사형수 참회시킨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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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0일 03시 00분


정양환 국제부
정양환 국제부
그의 삶은 24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마크 스트로먼(41). 기독교도인 그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표적 ‘증오범죄자’가 됐다. 테러 열흘 뒤, 보복으로 유색인종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힌두교도를 포함한 2명이 텍사스 주 댈러스 노상에서 영문도 모른 채 숨을 거뒀다. 법정은 최고형을 선고했고, 10년 만에 20일(현지 시간) 사형이 집행된다.

스트로먼에게 손을 내민 건, 다름 아닌 세 번째 피해자였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라이스 뷰이얀(37)은 당시 얼굴에 총을 맞고 사경을 헤맸다. 결국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런 그가 지금 스트로먼을 살리려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인터넷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몇 차례나 주 고위층을 만나 탄원서를 넣었다.

왜 뷰이얀은 원수에게 은혜를 베푸는 걸까. 그는 19일 미 공영라디오방송(NPR) 인터뷰에서 “이슬람교도라면 당연한 일”이라 말했다.

“많은 이가 오해하지만, 내가 배운 종교는 미움보다 용서를 가르쳤습니다. 신실한 부모님 역시 ‘가해자가 이교도라도 화해하라’고 조언했어요. 스트로먼을 만난 뒤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그 역시 피해자였어요. 잘못된 오해가 그를 고통으로 내몬 겁니다. 기독교 역시 복수를 가르치진 않잖아요.”

물론 이런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뷰이얀은 지금도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나 지난 세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안타깝게 숨진 이들이 있는 한 눈물도 사치였다. ‘스트로먼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이슬람에 대한 미국인들의 오해를 풀자.’ 그게 삶의 버팀목이 됐다.

진심은 통했다. 악마를 죽였다며 당당해하던 스트로먼. 하지만 뷰이얀이 내민 손에 고개를 숙였다. 희생자들에게 공개 사과했고, 최근엔 지역사회 이슬람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미 뉴욕타임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진짜 ‘믿음’이 뭔지를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겸허히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희생자들에게 죄송할 뿐이에요. 마음은 편안합니다. 뷰이얀 덕분에 세상 모든 종교는 사랑이 바탕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는 용서받아선 안 될 사람을 용서했어요. 성경을 실천한 건 바로 뷰이얀입니다.”

스트로먼의 삶은 24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극적인 사면이 이뤄질지, 그대로 형이 집행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뷰이얀은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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