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중심도 정체성도 잃으면 2등 정당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4일 03시 00분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어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여야 합의가 안 되면 다음(19대) 총선 때 공약으로 심판받겠다”고 말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70%가 한미 FTA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소속 의원이 172명으로 국회의석 과반수(57.5%)를 차지하는 여당이 ‘야당에서 합의해주지 않으면 한미 FTA를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18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에 등을 돌리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들의 임기 중에 제 할 일을 못 하는 집권당이 무슨 명분으로 다음 총선에서 심판을 받겠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신주류로 떠오른 ‘새로운 한나라’ 모임의 남경필 의원이 이번 주 “민심이 요구하는 방향을 정책으로 정해야 재집권이 가능하다”며 변화를 강조한 것은 원론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국가 장래와 5000만 국민, 더 나아가 북한 주민의 미래를 걱정하고 설계하는 정당이라야 집권할 자격이 있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소장파가 가치교체론을 주장하는데 한나라당의 가치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은 정강정책에 “집단이기주의와 분배지상주의 포퓰리즘에 맞서,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재도약과 국민통합,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한 대장정에 일로매진한다”고 명시했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총선에서의 승리는 좌파 정권의 분배지상주의 포퓰리즘에 실망한 유권자 다수가 한나라당을 선택한 결과였다. 한나라당이 작은 선거에 졌다고 좌파 정당의 포퓰리즘 정책이나 뒤쫓아가며 중심도 정체성도 잃게 되면 2등 정당이 되고 말 것이다.

서민의 아픔을 끌어안고 민생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은 정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힘든 일, 궂은일은 안 하면서 입으로만, 나랏돈으로만 선심 정책을 펴는 것은 책임감 있는 정당이라면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포퓰리즘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재정건전성을 위협해 미래 세대에 국가 부채를 떠넘기는 망국적 행위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한나라당명으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당명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국 정당들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지지율이 떨어지면 가장 먼저 들고 나오는 것이 이름 바꾸기다. 지금의 민주당인 열린우리당은 2007년 5월부터 6개월 동안 4번의 창당 또는 당명 개칭을 거쳤지만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했다. 한나라당이 스스로 뼈를 깎는 쇄신과 개혁에 나서지 않고 포장을 바꾸는 정도로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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