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손학규의 선택, 민노당이냐 중도우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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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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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챔피언으로 만든 4·27 재·보선은 유권자들에게 ‘한나라당이냐 반(反)한나라당이냐’를 물었던 선거다. 패배한 한나라당은 주류교체, 세대교체 실험에 들어갔다. 6일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 권력이 이동했고, 신주류는 이명박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에 시동을 걸었다. 소장파는 당의 새로운 파워그룹을 꿈꾸고, 그 과정에서 친이(친이명박)의 친박(친박근혜)화도 진행 중이다. 소장파 가운데는 보수 본류 색깔이 옅고, 이념적으로 좌우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다.

한나라당의 변모는 내년 4월 총선을 위한 공천, 내년 12월 대선을 위한 후보 경선과 관련해 자신들에게는 중요한 변화일지 모르지만 관객 눈에는 그저 ‘그들끼리의 리그’요, ‘찻잔 속의 태풍’ 같다. 역설적으로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당내 배역이 어떻게 바뀌든 이들이 대한민국 체제까지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좌파 진영에는 종북(從北)좌파와 반(反)김정일 좌파가 섞여 있지만, 한나라당이 친(親)김정일로 변질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문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분열을 거듭하고 좌파 야권(野圈)은 완전한 연대에 성공하면 좌승우패(左勝右敗) 가능성이 오히려 높을 수 있다.

이달 2∼6일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한나라당(31.2%) 자유선진당(2.4%)을 합친 우파정당 지지율은 33.6%인 데 비해 민주당(34.5%) 국민참여당(4.5%) 민주노동당(4.3%) 진보신당(1.3%)을 합친 좌파정당 지지율은 44.6%다.

이정희 대표 압박에 좌고우면

야권은 이미 작년 6·2 지방선거와 이번 4·27 재·보선에서 연대의 위력을 체험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뭉치면 이긴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럼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을 때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지난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에 합의하자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야권 연대냐, 한나라당이냐 선택하라”라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이 대표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지만 진보의 정책만은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결국 한나라당과의 합의를 파기했다.

이 대표가 말하는 ‘진보’는 어떤 것인가. 민노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한 해방의 새 세상’ ‘사적 소유라는 족쇄로부터의 해방’ ‘미국을 정점으로 한 외세의 배격’ ‘국가 주요정책의 직접민주주의 실현’ ‘남북한 모두를 진보케 하는 통일’을 정강정책 등에 담고 있다. 경제기적의 원동력이자 헌법정신의 핵심인 사유재산제와 시장주의를 상당부분 부정하고, 안보의 기둥인 한미동맹을 문제 삼으며, 의회민주주의보다 민중민주주의에 기울고,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보다 ‘대한민국이 변하는 통일’을 지향한다면 대한민국의 합헌정당일 수 있는가.

북한은 2003년 11월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으로 총선을 승리로 이끌자’는 2004년 총선투쟁지침을 발표했다. ‘각계 진보적 대중단체들은 민노당을 중심으로 굳게 단결해 민노당을 반드시 국회에 진출시켜 대중적 진보운동을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말이 대중적 진보운동이지, 요컨대 남한 내의 친북운동을 뜻한다.

민노당의 친북노선은 진보신당이 그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다시 통합 논의를 하고 있지만 북한 핵 및 세습체제에 대한 찬반이 팽팽한 상황이다.

민주당 손 대표를 정치적으로 벌떡 일어서게 해준 분당을(乙)은 분당우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손 대표는 좌파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차기 대선에서 이기자니 민노당이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하는 것 같다.

손 대표는 2007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까지, 특히 경기도지사 시절엔 민노당과 제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민주 시장경제주의자 행보를 보였다. 그는 외국 첨단기업 유치를 도정(道政)의 최고 목표로 삼을 정도였다.

3% 때문에 친북정권 만들 건지

이제 손 대표는 위헌정당 소지를 안고 있는 민노당과 공동정권이라도 만들 각오인지, 아니면 분당에서처럼 중도우파로 지지층을 넓혀 대통령의 꿈에 도전할 것인지, 둘 다 먹는 기회주의적 도박을 해볼 것인지?

2007년 17대 대선의 민노당 권영길 후보 득표율은 3%였다. 손 대표와 민주당은 그 3% 없이도 중도우파를 더 공략하면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3%라도 흡수하기 위해 민노당과 연대할 경우 중도보수 쪽에서 달아날 표가 더 클 수 있다. 그와 민주당이 민노당과 손잡지 않고 집권한다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 정통정권이 될 것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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