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손학규에 기회 준 민심…웰빙保守 희망 없다

  • 동아일보

경기 성남 분당을(乙)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대표인 손학규 후보가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를 이겼다. 한나라당의 전통적 강세지역이었던 곳에서 예상 밖 결과가 나와 민심(民心)이 손 대표에게 새로운 정치적 기회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 최문순 후보가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를 꺾었다. 경남 김해을(乙)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야권 단일의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를 이겨 체면을 살리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나라당의 참패다.

손 대표는 이번 승리로 향후 정치적 행보에 상당한 탄력이 붙게 됐다. 제1 야당의 대표로서 당내는 물론이고 야권 내 입지를 굳혔다. 무엇보다 원외(院外) 대표의 한계를 극복하고 당 장악력을 높여 나가면서 내년 대통령선거의 야권후보 단일화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됐다. 반면에 참여당과 유시민 대표의 기세는 추락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는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 국정운영에 실망한 수도권과 강원도 민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수도권과 강원도의 민심 역전은 작년 6·2지방선거 때부터 나타났다. 수도권 유권자는 전체의 49%, 강원도는 약 3%로 두 곳을 합치면 50%를 넘는다. 수도권과 강원도의 민심이 전국 선거의 향방을 좌우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재·보선에서도 김해을을 제외하고는 야권연대가 위력을 발휘했다.

여권은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안상수 대표는 잦은 말실수와 리더십 부족으로 적지 않은 실망을 줬다. 조기 전당대회로 변화와 쇄신을 이끌 새 지도부를 선출해야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도 과감한 인적 개편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여권의 고질적인 웰빙 보수(保守)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 중에는 스스로를 희생해 당을 살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나만 살고보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판을 친다. 친이(親李)-친박(親朴)은 물론이고 친이 진영 내부에서도 계파 간 신경전이 계속 불거져 국민이 눈살을 찌푸린다. 집안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빚어지는데 민심이 모아질 리 없다.

집권 4년차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도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 동남권 신공항 공약 파기에 이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도처에서 민심의 이반이 심각하다. 치솟는 생활 물가와 전세 대란을 수습하지 못해 경제만은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감도 허물어졌다. 재·보선 참패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이 조기에 나타날 수도 있다. 국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도 이 대통령은 광폭의 소통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민심이라는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한쪽으로 쏠리면 언제든지 균형추를 잡는 게 민심이다. 여권(與圈)이 의도적으로 재·보선 결과를 폄훼하거나 야권(野圈)이 작은 승리에 도취돼 일방통행으로 나간다면 여론의 역풍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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