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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기고/허승훈]쓰나미가 알려준 내 안의 용기와 사랑

입력 2011-03-26 03:00업데이트 2011-03-28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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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훈 유엔대 연구원
정치학에 ‘Critical Junctures’라는 개념이 있다. 인류는 사회적 경제적 위기를 초래하는 사건들을 통해 진보한다는 이 이론을,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국 9·11테러와 동일본 대지진을 겪고 나니 인간은 외부적 쇼크 없이도 스스로 진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사그라졌다. 9·11테러 이후 세계는 반미파든 친미파든 그 어느 때도 볼 수 없었던 국제 연대성을 보여주었다. 그 당시 관객의 입장에서 감상적 동정심으로 사태를 바라보았다면 이번 대지진 때 나는 도쿄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유엔대 11층 연구실에 있었다. 충격을 흡수하게끔 설계되었다는 이 건물은 유난히도 갈대처럼 휘었고 책장과 책상들이 종잇장처럼 날아다녔지만 지금 기억하는 건 나의 머리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간 동료애뿐이다.

모든 것을 겪고 난 후 내게 생명을 주신 분께 감사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생명을 잃은 수백 명은 사랑하지 않아서 목숨을 앗아간 것처럼 들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재난 앞에서 우리는 이처럼 무력할 뿐이다. 시부야에서 집까지 세 시간 넘게 걸어서 왔더니 야채가게를 하시는 이웃 쓰치야 씨가 오이와 포도를 ‘힘내자(간바리마쇼)!’라는 메시지와 함께 문고리에 걸어두었다.

지진해일(쓰나미) 전문가인 동료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 잠시 일본을 떠나고 싶은 유혹이 들었지만 와세다대에서 쓰나미와 관련된 강의를 하는 내가 나중에 무슨 낯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겠느냐며 팀을 구성해 미야기 쪽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나에겐 이 친구처럼 재난과 관련한 구체적 지식도 없고, 핵폭발을 막을 기술도 없고,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줄 권력도 없고, 엄청난 돈을 기부할 재력도 없다. 그렇다고 이 순간 앉아서 울부짖거나 비난하거나, 나는 살았음에 죄책감을 느끼며 사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음 날 눈을 떠 위험하다는 지하철을 용케 타고 근무지로 갔다. 지난밤 걸어서조차 집에 갈 수 없었던 동료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간다고 누군가의 목숨을 살릴 것도 아니지만, 어쩌면 어떨 때는 호들갑 떨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는 것이리라. 밤새 공포에 떨던 동료와 라면을 나눠 먹으며 아침나절을 보내고 오후에는 교코 씨와 메이지 신궁에 갔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도쿄 하늘 아래서는 이곳에서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위기 없이도 보편적 형제애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간이기에 우리는 함께 위기를 겪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허승훈 유엔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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