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국회서 벌어진 짜고 친 ‘개헌 토크쇼’

  • Array
  • 입력 2011년 2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승헌 정치부 기자
이승헌 정치부 기자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오전부터 시작된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은 서서히 개헌으로 초점이 모아졌다. 한나라당 내 친이(친이명박)그룹 개헌파가 논의를 이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대정부 ‘질문’이 아니라 개헌 전도사로 불리는 이재오 특임장관과 핑퐁처럼 대화를 주고받는 ‘개헌 토크쇼’로 변질되고 있었다.

특히 질의 대부분을 개헌에 할애한 이군현 권택기 의원과 이 장관 간의 질의응답은 개헌이란 정치상품의 프레젠테이션을 연상케 했다.

―개헌이 왜 필요한가.(이군현 의원)

“현행 헌법은 군사정권의 재등장을 막기 위한 것인데 이제 한국정치 수준은 그런 단계를 넘어섰다.”(이 장관)

―민주당에도 개헌 찬성 의원이 상당수 있다고 하던데….

“열린우리당이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키로 한 만큼 그 당의 법통을 이어받은 민주당도 개헌에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개헌론자이다.”

질의 도중 개헌 관련 여론조사 자료를 본회의장 스크린에 띄운 이 의원은 막판에는 “개헌이 왜 정략적인 게 아닌지 설명해 달라”고 물었다. 이 장관은 “개헌을 하려면 여야 의원 200여 명의 합의가 필요한 만큼 정략적이라는 것은(정략으로 이룰 수 있다는 얘기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화답했다.

권성동 권택기 조진래 의원도 유사한 질문을 던졌고 이 장관은 “1987년에 만든 헌법은 이제 시효가 다해…”라는 식의 답변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했다. 질의하는 의원이나 답변하는 장관 모두 질의응답 내용을 잘 알고 있었는지 종종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도 않고 문답을 주고받았다. 이 장관은 아예 눈을 단상에 고정한 채 준비된 원고를 읽기도 했다. 이 장관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개헌 토크쇼’를 지켜보며 친이 그룹이 과연 개헌이란 과업의 역사적 무게를 진정성 있게 느끼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개헌이 복잡한 이슈인 만큼 국민에게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때도 그랬듯이 개헌이 실현되기 위해선 미리 짠 듯한 ‘그들만의’ 질의응답보다는 ‘이거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는 정치적 울림이 국민 속에 메아리쳐야 한다.

무소속의 한 중진 의원은 기자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정략적이라는 비판에도 직접 국민 앞에 나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말했다. 지금 한나라당은 과연 그런 열정이라도 보여주고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