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영어토론 전형도 막으면서 무슨 인재 강국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6일 03시 00분


민족사관고가 입시전형에서 무성영화를 보여준 뒤 영어토론을 시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게 됐다. 고교 입시에서 필기고사와 교과지식을 묻는 구술면접, 적성검사는 못하게 한 ‘자기주도 학습전형 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용인외고도 영어 동영상을 활용한 질문과 수학 심화과정을 묻는 면접을 했다며 교육청에 정원 감축 등 단호한 처분을 지시했다.

민사고는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토론하는 학교다. 정부로부터 한 푼도 지원받지 않고 2010년에만 88명을 해외 유명대학에 진학시킬 만큼 교육성과가 크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인재를 기르는 것이 목표인 민사고에서 영어토론 전형은 징계 대상이 아니라 권장해야 할 일이다. 용인외고도 글로벌 리더가 될 소질을 갖춘 학생들에게 수월성(秀越性) 교육을 시키기 위해 설립된 학교다.

이명박 정부는 우수한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포기하고 온통 사교육 때려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듯한 모습이다. 교과부는 올해 총사교육비가 20조9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5% 감소했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고교 입시제도 개선, 학원 단속 같은 사교육 대책이 효과를 거두었다”며 사교육비 공식 집계 이래 10년 만의 첫 감소를 자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사교육비 감소를 교육정책의 성공과 직접 연결하는 것은 잘못이다. 학생이 21만 명 줄었고 경기후퇴로 인한 가계소득 감소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내신 1등급 학생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영어토론 전형까지 막는다면 신입생을 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으라는 건지 답답하다. 윤정일 민사고 교장은 “개정된 교육법 시행령에 자립고는 자율고로 바꾼 다음에도 학교장이 입학전형을 실시할 수 있게 돼 있다”며 “못하는 학생들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잘하는 학생들을 끌어내리는 정책으로 이 정부가 무엇을 이루려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자연자원이 풍부하지도 않은 나라에서 내세울 것은 인적자원밖에 없다. 지식경제사회로 갈수록 우수한 인적자원이 더 많은 나라가 국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한 명의 똑똑한 인재가 수십만 명, 수백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대다. 이 정부는 과거 좌파정부보다 더 심하게 고교입시를 간섭해 미래인재들의 싹을 자르고 있다. 이 정부가 초기에 내세웠던 ‘교육 자율화를 통한 인재강국’이라는 교육 목표는 사교육 잡기에 밀려 실종돼 버렸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