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그제 한화그룹의 비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혐의 내용보다는 한화 측의 조직적인 수사 방해를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한화그룹도 보도자료를 내고 혐의 내용을 반박하면서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기소에 대해 소명할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검찰은 비자금 수사를 종료하면서도 증거인멸 행위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과 기업이 마치 감정싸움하듯이 치고받는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양쪽 모두 사법부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바른 자세다.
과잉 논란을 빚은 한화그룹 수사 과정에서 재계의 불만이 쏟아지고 권력이 불편한 심기를 노출한 정황이 엿보인다. 서울 서부지검의 일선 검사들로부터는 “수사 못해먹겠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남기춘 서부지검장은 검찰 전산망에 수사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수사의 장기화와 부실 수사로 인한 법원의 영장 기각이 장외 공방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검찰은 금융감독원의 의뢰로 지난해 9월 수사에 나선 이후 무려 5개월에 걸쳐 수사를 벌였다. 세 차례 소환 조사를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팔자(八字)가 세서…”라며 불만을 내비쳤다. 전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한화그룹의 전·현직 임직원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됐다. 검찰은 382개의 차명계좌와 1077억여 원의 비자금, 3242억 원의 횡령 배임 혐의를 밝혀내고도 피고인 전원을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수사 책임자인 남 지검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와 고검장급 6명에 대한 때 아닌 전보 인사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김준규 검찰총장과 남 지검장의 ‘무리한 수사’에 제동을 걸기 위한 권력의 ‘손보기 인사’라는 해석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태가 검찰의 수사 위축을 부르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검찰은 한화그룹 측의 내부 제보자 매수, 압수수색 정보에 따른 중요자료 파손, 임직원들의 거짓 진술 강요, 증거자료 은닉 같은 수사 방해를 비판했다. 이 또한 사실이라면 법의 이름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김 검찰총장은 2009년 8월 취임사에서 ‘정정당당하고 세련된 수사, 신사다운 수사 및 페어플레이 정신, 명예와 배려’를 강조했다. 검찰은 재계에서 ‘싹쓸이 수사’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데 대해 과연 정도(正道) 수사를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검찰의 과잉 수사도, 기업의 수사 방해도 모두 법치를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