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과 청와대, 시도지사의 쓴소리 들으라

  • 동아일보

“서울시 무상급식 전선(前線)은 사실상 6·25전쟁 때의 ‘낙동강 전선’이며, 여기에서 밀리면 부산까지 간다. 함께 싸우지는 못할망정 당론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지자체장이 힘 빠지지 않게 해 달라.”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한나라당 간담회에서 당 지도부를 향해 절규 같은 말을 쏟아냈다. 오 시장은 작년 6·2지방선거에서 힘겹게 살아 돌아왔지만 서울시의회는 민주당이 의석의 69%를 차지하는 압도적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으로 바뀌었다. 오 시장이 시의회의 일방적 무상급식 예산 편성과 조례 제정에 반대해 주민투표 카드를 꺼냈지만 한나라당 지도부는 말만 무성할 뿐 이를 성공시키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침묵 내지 방관 속에는 오 시장이 무상급식 막기에 성공해 힘을 받으면 대선 후보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정파적 시각도 작용하고 있다. 같은 당 소속 권영세 의원은 “보편적 (복지) 문제와는 좀 분리해 무상급식 문제는 우리 헌법상 제공하게 돼 있는 의무교육 서비스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며 야당 주장과 비슷한 말을 했을 정도다. 동아일보는 21일자 본란에서 무상급식을 의무교육의 일부라고 주장한 권 의원의 ‘해괴한 등식’을 비판한 바 있다. 한나라당이 벌써부터 내년 선거의 계파별 이해득실을 염두에 두고 분파적 행태를 보인다면 미래를 잃어버릴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쏟아진 발언 중에는 청와대와 당이 국정을 바로 추스르려는 뜻이 있다면 경청해야 할 쓴소리가 많았다.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을 비롯한 정부과천청사 이전 문제, 영남권 신공항 문제 등 대형 국책사업에 얽힌 지역 간 갈등을 조정해 내지 못하는 당의 무력함도 도마에 올랐다. 기초과학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리려는 국책사업인 과학벨트의 입지 선정을 놓고 당 지도부와 청와대는 ‘함구령’을 내려놓았다. 과학기술계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지역별 민심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대구의 김범일 시장조차 “내년 총선 때 한나라당 의원들은 각오하라는 게 지역 민심”이라고 경고했다. 안상수 대표는 간담회에서 “16개 시도 중 여섯 분밖에 안 계시니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지만, 시도지사를 6명밖에 내지 못한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의 중앙과 지방이 따로 놀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더 큰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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